‘네가 태어나기 전에.’ 그림=크리스티나 슈워너, 큰나(출간 예정)
이 그림은 한 아이의 탄생 설화를 담고 있다. 태어나기 전에 아이의 영혼이 제일 높은 하늘에 있었는데 천사가 그 영혼을 데리고 세상으로 내려와 씨앗 속으로 들어가게 했고 그런 뒤 어머니 속으로 가져간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자라는 동안 ‘비밀의 책’을 읽어 주며 일흔 가지 말과 동물의 말, 그리고 바람의 말을 가르치고 아이의 과거와 미래를 포함한 영혼의 역사를 이야기해 준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가르쳐 준 모든 것을 비밀로 간직하라고 손가락을 아이의 입술에 대서 우리의 입술에 있는 자국이 생겼다.
성자들이나 개국시조들에게는 초자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탄생 설화가 있게 마련인데, 이 이야기는 보통 사람 이야기로서, 어린 아이에게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하는 것에 비하면 사람의 품격을 대단히 높여 놓고 있다. 인간의 전생(前生)과 그 탄생에 성성(聖性)을 부여하고 있으니까.
하늘이 가르쳐 준 것을 비밀로 (즉 깊이) 간직하라고 했다니까 말인데, 힌두교에는 진리를 제자들에게 이야기해 줄 때 듣는 사람의 귀에 대고 그야말로 크나큰 비밀처럼 소리 없이 속삭이는 법도가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옳은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귀에 대고 거의 숨결로 속삭이는 까닭은 우선 그 진리가 소중해서 그럴는지 모르는데, 큰 소리로 말하면 진리가 바깥으로 흩어져 달아나 버릴는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진리는 말이 아니라 숨결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진리의 숨결을 귓속에 고스란히 부어 넣는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또 진리라는 것은 그것을 아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것이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것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하고 삼가면서 귀에 대고 속삭이는 염치를 보인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제일 강하게 든다!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광신적인 태도의 이루 말할 수 없는 폐해를 상기하면서, 큰 목소리나 큰소리치기를 수상쩍게 여기는 이유다.
▼알립니다▼
이 코너는 다음 주부터 한국의 대표적 지성이자 문학평론가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집필합니다. 작년 11월 18일부터 이 코너를 연재해 온 정현종 시인은 재충전을 위해 집필을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