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 영화 흥행 성적 4위를 기록한 ‘일본 침몰’의 주연배우 구사나기 쓰요시 등이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일본 영화는 4, 5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사양산업의 대명사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 대도시의 복합상영관에서는 서양 영화보다 일본 영화 매표창구 앞에 줄이 더 길게 늘어서 있을 때가 많다. 지난달 27, 28일을 기준으로 흥행성적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도 일본의 전통 시대 액션극 ‘도로로’다.
일본 영화의 부활은 일본영화제작자연맹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자료에서 구체적인 수치로도 입증된다.
지난해 일본의 자국 영화 시장점유율은 53.2%로 21년 만에 외화를 앞질렀다. 2002년에 비하면 거의 2배로 높아졌다.
일본 영화의 지난해 흥행수입은 사상 처음으로 1000억 엔(약 8000억 원)을 넘어섰다. 흥행수입이 50억 엔 이상인 영화가 6편, 10억 엔 이상인 영화가 28편으로 각각 사상 최다였다.
빈사상태에서 헤매던 일본 영화가 이처럼 눈부시게 되살아난 비결은 뭘까.
지난해 개봉작 27편 중 10억 엔 이상 수입을 올린 영화가 15편인 영화사 ‘도호(東寶)’가 해답의 열쇠를 쥐고 있다.
도호의 히트작 대부분은 기존 영화계가 아닌 TV방송국 주도로 만들어졌다. 10대 히트작만 따지면 단 하나의 예외도 없다.
피 말리는 시청률 경쟁에 익숙한 TV방송국들은 작품성을 중시하는 기존 영화계와 달리 철저하게 흥미와 대중성을 위주로 영화를 만들었다.
지상파를 장악하고 있는 TV방송국들의 가공할 홍보력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TV방송국들은 개봉이 임박하면 주연 배우들을 자사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대대적으로 영화를 홍보했다. 막강한 자본력을 무기로 한 할리우드 영화가 마케팅전에서 오히려 열세에 놓이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
일본은 자국 영화 부활의 여세를 몰아 해외시장 공략에도 적극 나설 채비다. 방대한 국제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종합상사들이 영화산업에 뛰어들고 있고 일본 정부도 각종 지원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 일본 영화의 아시아 공략이 본격화될 때 ‘한류(韓流)’에 어떤 영향이 올지는 현재로선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2005년 일본 시장에서 10억 엔이 넘는 수입을 올린 한국 영화가 3편이지만 일본 영화가 경쟁력을 되찾은 지난해에는 단 한 편도 흥행수입 10억 엔 벽을 깨지 못했다는 사실이 던지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도쿄=천광암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