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삼성에 갈베스란 외국인 투수가 있었다.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에서도 뛰었던 그는 시즌 초반 승승장구했다.
그랬던 그가 일찌감치 10승을 올린 뒤 이상해졌다. 8월에 모친의 병환을 핑계로 도미니카공화국으로 건너가더니 “어깨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7번이나 귀국 약속을 어겼다. ‘양치기 소년’ 갈베스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서야 돌아왔지만 극심한 부진을 보였고, 삼성은 두산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런 그에게 ‘10승 옵션’이 걸려 있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며칠 전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뉴욕 메츠와 계약했다. 그는 두 번째로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었지만 이번엔 좀처럼 둥지를 찾지 못하다 메츠 유니폼을 입었다.
작년 1550만 달러(약 145억 원)를 받았던 그의 순수 연봉은 겨우 60만 달러. 대신 199이닝을 넘기면 240만 달러를 추가로 받는다는 옵션을 걸었다. 갈베스와는 달리 승수 대신 이닝에 연봉의 4배에 이르는 옵션을 건 것이다.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투수는 대개 32번에서 36번가량 등판한다. 박찬호로선 거의 매 경기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수준의 투구를 해야 옵션을 채울 수 있다. 빅리그 14년차가 되는 박찬호는 한창 전성기 때도 200이닝 이상을 던진 것은 3시즌에 불과하다.
그만큼 200이닝 투구는 선발 투수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공을 가졌지만 기복이 있는 투수와 점수를 좀 주더라도 꾸준히 6이닝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있다면 감독은 십중팔구 후자를 선택한다.
장기 레이스에서는 선발 투수가 오랜 이닝을 버텨 줘야 불펜 투수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두산의 리오스와 같은 ‘이닝 이터(Inning Eater·완투형 투수라는 뜻)’는 그래서 승패 여부를 떠나 소중한 존재다.
스스로 ‘평범한 투수’라던 박찬호는 아주 ‘평범한 계약’을 했다. 그러나 선발 투수로서 누구보다 ‘정직한’ 계약을 했다. 이번 계약은 그래서 박찬호와 메츠 모두에 ‘윈윈’일 수밖에 없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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