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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경제]같은 상품을 왜 다른 값에 파는 거죠?

입력 | 2007-02-14 02:58:00


◆사례

새 학년을 준비하는 달콤한 봄방학. 효정(13)이와 친구들은 오랜만에 함께 뭉치기로 했다.

‘어디서 뭘 하고 놀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K몰에 가기로 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수족관, 대형서점, 그리고 음식점과 각종 상점이 즐비해 하루 종일 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즐겁고 알뜰하게 놀기 위해 치밀한 계획도 세웠다.

‘조조 영화를 본다.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한다. 이후 일부 전시관과 수족관 구경을 하면서 소화를 시킨다. 오후엔 상점에서 간단히 쇼핑을 즐긴 뒤 저녁은 퓨전 레스토랑에서 분위기를 낸다.’

효정과 친구들은 우선 영화, 퓨전 레스토랑 등에서 할인받을 수 있는 이동통신 카드를 챙기고 할인 쿠폰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영화 요금표를 보는 순간 빙그레 미소가 피어올랐다.

‘조조할인에 할인카드를 사용하면 정말 싸네. 할인 카드의 위력은 놀라워!’

영화 요금표를 들여다 보니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평일과 주말이 각각 다른 요일별 할인, 조조 오전 심야 등 시간대별 할인, 연령별 가격 할인, 2편 연속 관람 할인 등 영화 한 편을 감상하는 비용은 대략 2000원에서 1만 원까지 다양했다.

효정이는 가는 곳마다 유심히 가격표를 챙겨봤다. 영화관만큼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전시관과 수족관도 연령별 가격 할인제도가 있었다. 어떤 상점들은 할인 제도는 아니지만 마일리지 방식으로 구매 점수를 쌓아줬다. 어찌 보면 당연한 듯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많다고 더 구경하는 것도 아닐 텐데. 아님, 노인이라서 우대하는 걸까.’

전시관과 수족관에서 발품을 판 데다 몇몇 상점에서 액세서리까지 사고 나니 일찍 허기가 몰려왔다.

폼 나는 저녁을 위해 계획한 퓨전 레스토랑을 떠올리자 군침부터 돌았다.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알뜰하게 보냈으니 한 번쯤 ‘사치’하면 어떠하랴.

맛있게 저녁을 먹고 계산대에 서니 다시 할인 쿠폰과 할인 카드의 위력이 발휘됐다.

‘역시 꼼꼼하게 챙기기를 잘했지!’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효정은 다시 궁금해졌다.

‘똑같은 상품을 파는데 왜 가격을 다르게 매기는 걸까?’

◆이해

구매자에 따라 같은 상품의 가격을 달리 매기는 행위를 ‘가격차별(price discrimination)’이라고 부른다.

가격차별이 이뤄지려면 일정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시장을 두 개 이상으로 분리할 수 있고, 각 시장에서 사려는 사람들의 ‘지불용의’ 가격이 서로 달라야 한다.

예를 들어 ‘영화 관람 시장’은 요일별, 시간별, 연령별 등으로 시장을 나눌 수 있다. 요일별 시장에서는 평일과 주말 관람객의 지불용의 가격이 다르다. 평일에 영화를 보는 사람은 비교적 시간 여유가 많지만 주말 관람객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당연히 후자가 평일보다 영화에 대해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금액이 높을 것이다.

또 가격차별이 가능하려면 값싼 시장에서 상품을 사서 비싼 시장에 상품을 되파는 ‘차익거래(arbitrage)’가 없어야 한다.

차익거래가 가능하면 값싼 시장에서는 사는 사람이 많아져 가격이 상승하고, 비싼 시장에서는 파는 사람이 많아져 가격이 하락한다. 결국엔 두 시장의 가격 차는 없어진다. 영화 관람 시장에서는 평일 영화표(값싼 시장)를 주말 영화표(비싼 시장)로 되파는 행위가 불가능하다.

우리 주변에서 가격차별의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철도 운임이나 항공 요금 역시 요일별로 가격이 다르다. 호텔이나 콘도미니엄의 숙박 요금도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

우리 지갑에 한두 장씩 갖고 있는 각종 마일리지 카드, 할인 쿠폰에도 가격차별의 미학이 숨어 있다. 꼼꼼하게 마일리지 카드나 할인 쿠폰을 챙기는 사람은 그만큼 가격에 민감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 가격이 비싸면 언제든지 등을 돌릴 가능성이 있는 만큼 다른 소비자보다 가격을 깎아주는 것이다.

판매자는 이런 가격차별을 통해서 높은 가격을 지불할 소비자에게는 비싸게, 낮은 가격을 지불할 소비자에게는 싸게 상품을 팔 수 있다.

고객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해 가격차별의 미학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매출과 이익을 끌어올리는 주요한 방법이 된다.박형준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교육 전공

정리=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