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가까운 전통을 지닌 독일 드레스덴 성십자가 합창단과 드레스덴 필하모니가 3월 초 내한해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연주한다. 사진 제공 빈체로
《“내 뺨에 흐르는 눈물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오, 내 마음이라도 받아주소서!/하지만 저 상처에서 천천히 떨어지는/성혈을 위한 희생의 잔이 되게 해주소서.”
(바흐 ‘마태수난곡’ 제61곡 아리아)
깊은 밤. 바흐의 음악을 듣는다.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겸비한 그의 음악은 언제나 지쳐 있는 사람들의 영혼에 위로와 안식을 가져다준다. 부드러운 합창과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독창자의 아리아.
한글 가사집을 꼼꼼히 읽어 가며 듣는 그의 ‘마태수난곡’은 영화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처럼 생생한 수난의 현장으로 끌어들인다.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덧 군중 속의 한 사람이 되어 조소하고, 비난하고, 슬퍼하고, 십자가에 매달게 하며, 뉘우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독일 드레스덴 성십자가 합창단-필하모니 내달 내한 ‘마태수난곡’ ‘레퀴엠’ 공연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배반하리라.”
“주여 접니까?”(합창)
바흐는 평생 깊은 신앙심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을 작곡했다. 미국 콩코디어 신학교의 마르틴 나우만 교수는 “바흐는 음악을 통해 설교한다”고 말한다. ‘마태수난곡’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의 이야기를 묘사한 극음악으로 바흐의 종교음악 중 최고봉의 위치에 있는 작품. 합창, 아리아, 레치타티보(해설, 대사 부분)로 구성돼 있어 어떤 오페라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1729년 성(聖) 금요일인 4월 15일 라이프치히 성토마스 교회에서 초연된 이 곡은 바흐 생전에 단 두 번밖에 연주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0년 뒤. 멘델스존은 사라졌던 이 곡을 부활시켜 전 세계적으로 바흐 재발견 붐을 일으켰다.
전체 2부 78곡으로 이뤄진 마태수난곡은 전곡 연주에 3시간이나 걸리는 대작이다. 국내에서는 2004년 내한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토마스 합창단이 처음으로 전곡을 연주했다. 3월 3, 4일에 독일 드레스덴 성십자가 합창단과 드레스덴 필하모니가 내한해 두 번째 전곡 연주를 들려준다. 이 합창단의 28대 칸토르(합창 지휘자)인 로데리히 크라일레가 ‘마태수난곡’을, 이 합창단 출신의 세계적인 테너 페터 슈라이어가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지휘한다.
1216년에 창단된 드레스덴 성십자가 합창단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독일 프로테스탄트 1교회 소속의 소년합창단이다. 빈 소년합창단 등이 예쁘고 천상적인 울림을 구사하는 데 비해, 이 합창단은 알토 중심의 힘 있는 10대 소년들의 음색을 들려준다. 일반적으로 고음이 강점인 소년합창단에서 소프라노 솔리스트를 배제한 이 합창단의 소리는 묵직하고 깊은 울림이 있는 소리로 다가온다.
‘레퀴엠’의 지휘를 맡은 페터 슈라이어는 ‘마태수난곡’에서 단골로 에반겔리스트(복음사가)로 활약해 온 인물. 에르하르트 마워스베르거, 카를 리히터가 지휘한 ‘마태수난곡’ 음반 및 DVD에 에반겔리스트로 등장한다. 에반겔리스트는 수난곡에서 복음서의 내용을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획사인 빈체로 측은 공연장에서 ‘마태수난곡’ ‘레퀴엠’의 한글 가사를 자막으로 서비스할 예정이다. 수난곡이나 레퀴엠의 경우 일반적으로 공연이 끝났을 때는 박수를 치지 않으며, 감동의 여운을 느낄 수 있도록 앙코르 곡도 연주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공연정보: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3월 2일 오후 7시 바흐 ‘마태수난곡’(약 3시간 반).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3월 3일 오후 8시 모차르트 ‘레퀴엠’, 바흐 칸타나 21번 ‘내 마음에는 근심이 많도다’(약 2시간), 3월 4일 오후 2시 반 바흐 ‘마태수난곡’. 3만∼20만 원. 02-599-5743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