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햄버거’부터 눈에 들어온다. 햄버거 빵과 빵 사이에는 테이블 서너 개가 놓여 있다. 무대 오른편에 서 있는 팻말, ‘월리 버거’.
국내에서 초연되는 희곡 ‘네바다로 간다’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사막에 위치한 햄버거 가게가 배경이다. 공연 내내 공간적 배경은 변하지 않지만, 시간적 배경은 3번 바뀐다. 1964년 여름, 1984년 여름, 그리고 1994년 여름(원작은 1940년, 1958년, 1981년 여름이다).
등장인물은 3명. 손님이라곤 없을 것 같은 오지에 전 재산을 털어 햄버거 가게를 차린 결혼 5년 차 부부 월리(한명구)와 루이스(이연규), 그리고 고작 11달러만 들고 스타를 꿈꾸며 할리우드로 가던 중 이 가게에서 하룻밤 묵게 된 철부지 아가씨 재닛(정재은). 재닛이 춤과 노래를 선보이자 월리는 말한다. “그래도 재능보단 돈이 많군.”
이 연극은 이런 식의 농담으로 가득하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선보였을 당시 위트 있는 대사가 칭찬받았지만, 어쩌면 우리에겐 다소 미국의 TV 시트콤을 보는 듯한 유머일 수도 있겠다.
20년을 뛰어넘어 중년이 된 월리와 루이스. 월리는 여전히 손님 없는 햄버거 가게에 집착하고 루이스는 사막 생활이 지겹다. 월리가 할리우드에서 상처투성이 삶을 끝낸 뒤 이곳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재닛과 바람피운 사실을 알게 된 루이스는 자신의 불륜을 스스로 폭로하며 월리에게 상처를 주고 집을 나간다.
이 작품의 재미는 1시간 반 동안 무대에서 흘러가는 30년의 세월이다. 가게에 걸린 사진이 오드리 헵번에서 마돈나로 바뀌는 등 디테일한 세월의 변화를 찾아보는 맛도 있지만 그보다는 청춘에서 중년으로, 다시 노년으로 변한 배우들의 모습과 연기를 보는 재미가 더 크다. 세 배우가 대사를 치고받는 타이밍과 호흡이 특히 중요한 작품.
성공의 꿈에 부풀어 월리와 루이스가 평생을 바쳤던 햄버거 가게. 성공은 결국 꿈으로 끝났지만, 그래도 결론은 경쾌한 해피 엔딩이다.
한태숙 연출이 설명하는 이 작품의 주제는 ‘기다림’이다. “3명의 인물이 갖는 희망과 그들이 기다린 30년의 세월”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젊은 관객들은 뜨거웠던 신혼도, 힘들었던 중년의 고비도 모두 넘기고 노년을 맞은 부부가 함께 해 온 ‘세월’이 더 와 닿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당신 인생을 망쳐놨지? 그렇다고 해도 돼. 그런 말 받아들일 만큼 충분히 나이 먹었다고”라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답한다. “뭐, 조금. 하지만 어떤 남편이나 다 조금은 아내의 인생을 망쳐놔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요.” 이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노년이라면, 나쁘지 않겠다. 14∼25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02-744-7307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