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장훈 씨의 나눔의 원칙은 “팬들에게서 받은 사랑을 모두 다 내놓겠다”는 것. 수입도 생활리듬도 들쭉날쭉한 그이지만 약속했던 기부금액이나 봉사활동을 반드시 지키는 것도 이런 ‘책임감’ 때문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올해로 데뷔 17년째인 가수 김장훈(40) 씨. 지금껏 9장의 앨범을 냈고 대학로부터 시작해 전국의 공연장을 누비며 라이브 공연을 하느라 ‘길 위의 인생’을 사는 그지만 불규칙한 생활 리듬에도 결코 쉬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몸으로든 돈으로든 기부를 하는 일이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 8만 원짜리 셋방에 살던 무명가수 시절부터 시작된 ‘습관’이다. 》
○ “노래 말고는 모두 내줄 수 있다”
공연이나 방송 출연 여부에 따라 그의 수입은 매월 들쭉날쭉하지만 기부액은 월급처럼 꼬박꼬박 매달 1500만 원을 채운다.
그의 기부금은 경기 부천시 ‘새 소망의 집’, 서울 강서구 ‘효주 아네스의 집’, 서울 은평구 ‘데레사의 집’ 등 3개 보육원과 대학에 갈 때까지 생활비와 학자금을 지원해 주기로 한 초등학생에게 간다.
지난달 19일 여의도에서 인터뷰에 응한 그는 ‘왜 기부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배를 곯면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느낌을 알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저 자신이 유복자로 어렵게 자랐어요. 성장기 때 받은 마음의 상처는 잘 지워지지 않아요.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인데 더 과감히 지원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2001년에는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불우청소년을 위한 교회 설립 기금으로 앨범 계약금, 수익금 9억 원과 사재 3억 원 등 총 12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그의 기부는 ‘후원금 전달’로 끝나지 않는다.
올해도 설날이 지나고 나면 김 씨의 입 주위는 짓무르게 될 것이다. 매년 1월 1일, 설날, 추석,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나면 늘 그랬다. 자신이 후원하는 ‘새 소망의 집’ 아이들을 데리고 눈썰매장이나 놀이공원에 가 놀아 주느라 몸을 너무 많이 굴려서다.
2005년에는 ‘새 소망의 집 축구단’도 만들었다. 만 18세면 보육원을 나가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떠난 후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모여 서로 다독거리자는 뜻에서 만든 축구모임이다. 그는 공연 때마다 좌석의 1%를 장애인과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비워 둔다.
3년 전부터는 후원하는 보육원 아이들에게 자신의 공연장에 친구를 한 명씩 초대해 동반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 기죽지 않고 ‘어깨 딱 펴고’ 생활하게 해 줄 무언가를 마련해 주고 싶어서다.
기부의 시작은 목사인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희망을 위해서’ 스스로 하는 일이 됐다.
“가수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는 직업이에요. 제 공연을 보기 위해 관객은 용돈을 저축하고, 월급을 아끼고, 시간을 쪼개 달려옵니다. 그런데 제가 받은 돈과 시간을 어떻게 저만을 위해 쓸 수 있겠어요.”
○ “나눔은 이벤트가 아니다”
대책 없이 베푸는 것 같아 보이는 그지만 고집스럽게 지키는 ‘나눔의 원칙’은 있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홍보대사는 하지 않는다는 게 그중 하나다.
“홍보대사 직함을 가지면 영광이겠지만 이름만 달아 놓고 열심히 안 하면 상대도 실망해요. 나눔은 이벤트가 아니거든요.”
그에게 나눔은 ‘책임’ 혹은 ‘약속’과 동의어다.
기부를 약속 받은 쪽은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사용처를 계획해 뒀을 텐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상대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 수입이 적자였던 어느 달 그는 자신의 후원금을 기다리는 보육원 아이들을 위해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기도 했다.
공연에서 얻은 수익금은 다른 사람을 위해 쓰기로 한 자신과의 약속도 지금까지 어기지 않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걱정이 없지는 않다. 칠순을 넘긴 어머니, 언제 ‘인기’라는 정년이 다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직업, 라이브 공연 도중 불시에 터질지 모르는 사고….
“모아 놓은 돈도 없는데 사랑하는 가족이 나로 인해 불행해지진 않을지 저도 불안하죠. 그래도 나누는 순간이 행복해요. 돈은 사는 데 불편이 없을 정도면 되고 시간은 잠을 줄여 마련하자고 생각하죠.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할 수만 있다면요.”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