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하라면, 내게는 학교와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이 있었다. 나는 가르치는 것을 믿지 않았다. 고독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일만이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근래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 열렸던 맨 레이(1890∼1976) 사진 전람회의 맨 끝 벽에는 ‘참여하지는 않지만, 무관심하지도 않았던’이라는 문구가 인상 깊게 쓰여 있었다. 이 문구는 레이와 생의 마지막을 같이했던 그의 부인 줄리엣 맨 레이가 파리 몽파르나스에 있는 그의 묘비에 썼던 것이었다. 이는 물론 레이가 살아 있을 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었다. 그의 자서전 ‘나는 다다다’(원제 ‘Self Portrait’)를 펼치면, 왜 그가 평소 자신의 삶을 이 한 문장으로 정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레이는 현대 문학예술의 정신적 기반이며 20세기의 예술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다다(dada) 운동과 초현실주의 운동의 한복판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한 사진가이자 화가였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평범한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당시의 현대미술에 매혹되어 뉴욕으로 거처를 옮겼다. 거기서 그는 ‘뉴욕 다다’를 이끈 마르셀 뒤샹, 프랑시스 피카비아 등과 만나면서 뉴욕 다다운동의 주도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1921년엔 파리로 거처를 옮겨 파리 다다에 합류했다. 앙드레 브르통과 파리 다다의 회원들이 주도한 초현실주의 운동에 가담하면서 사진가로서 또는 화가로서 명성을 얻었고, 파리와 미국을 오가며 오랜 기간 다양한 장르의 실험을 지속했다.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 사진을 레이는 초현실주의적인 사진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그에 의해서 사진은 처음 본격적으로 현대예술의 주류로 편입되었고, 기계시대의 미학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매체로 인정받게 되었다.
레이의 자서전엔 이러한 그의 삶의 여정, 작품에 대한 고민과 철학, 주변 사람들의 얘기 등이 잘 녹아 있다. 평생을 친구로 살았던 뒤샹과의 일화부터 여성들과의 사랑과 이별, 전쟁의 경험, 당시 파리 미술계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에 이르기까지 한 위대한 예술가의 삶과 주변이 파노라마처럼 얽혀 있다.
때로는 성공을 위해 브르통이나 돈 많은 귀족 부인들의 눈치를 보는 대목도 있고, 생존을 위해 혹은 작은 편리함을 위해 슬쩍 거짓말을 하는 장면 등도 스스럼없이 솔직하게 펼쳐 보인다. 그래서 이 위대한 예술가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고 옆집 아저씨 같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나온다.
원래 사진가는 자기 작품 외에도 인물사진이나 잡지 및 도록에 필요한 사진을 찍어 주는 재주 때문에 다른 예술 분야의 사람들과 유달리 교분이 많은 편이다. 레이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의 자서전에는 뒤샹이나 브르통 외에도 트리스탕 차라, 파블로 피카소,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콘스탄틴 브란쿠시, 살바도르 달리, 장 콕토 등 20세기 예술을 빛낸 수많은 작가의 삶과 취향들이 촘촘하게 얽혀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더구나 이 책은 소설 쓰기를 열망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가 ‘가장 허구적인 자서전이 가장 사실적인 전기보다 낫다’고 뻐기면서 1951년부터 63년까지 13년간 집필한 그의 또 다른 예술작품이며, 원제목처럼 그의 자화상이다.
박주석 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