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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칼럼]그래도 꼭 직선제라야 하나

입력 | 2007-02-22 03:00:00


교수들이 뽑은 총장이 한 학기도 맞기 전에 사임해 버렸다. 승마하자마자 낙마해서 큰 낙상을 입은 총장이나, 그 불운의 기수를 말안장 위에 올려 앉힌 교수들이나 민망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대서 이 일이 단명의 총장과 그를 뽑은 교수사회에만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문제는 보다 근원적으로 대학 캠퍼스에 이색적인 선거 바람을 일으키는 ‘총장 직선제’에 있는 것은 아닐까.

권력이 있는 곳엔 그를 넘보는 ‘야심가’들이 있다. 복수의 야심가들이 권력을 노리면 권력투쟁이 일어난다. 일단 벌어진 권력투쟁엔 ‘승리 외에 대안이 없는 것’이 싸움의 논리다. 권력투쟁은 진흙탕의 개싸움이 되곤 한다.

대학은 권력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며 야심가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도 아니다. 대학은 권력투쟁에서 초연한 상아탑에서 연구하고 교육하는 기관이다. 대학도 기관인 이상 기관장이 없을 수 없다. 기관장은 기관을 운용하기 위해 나름대로 권력도 갖지만 대학총장 자리는 권력을 누리기보다 대학의 발전을 책임지는 공직자로서 연구 시간을 희생하며 맡게 되는 명예직이다.

총장 직선제의 우울한 자화상

물론 권력의 세계와 명예의 세계는 서로 갈라져 있기보다 동전의 앞뒤처럼 겹쳐 있다. 어디다 더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총장 직선제가 도입되면서 대학 기관장 자리가 권력의 자리, 권력을 쟁취하는 자리가 돼 버렸다는 점이다.

선거엔 양반이 없다. 순진한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선거전은 순진하지 않다. 선거를 하면 어디서나 하는 짓이 비슷하다. 캠퍼스에서도 누가 생뚱맞게 만면미소로 다가와 힘주며 악수를 하고 연말에 연하장을 보내는 등 안 하던 짓을 하면 선거가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학에도 ‘야심가’들이 똬리를 틀고 참모들이 둔치게 된다.

교수사회에서 총장을 뽑는 것은 그래도 같은 직장의 동료 가운데서 고르기 때문에 ‘야심가’의 인품이나 자질을 어느 정도 알고 표를 준다. 그런데도 취임식도 갖지 못한 사산아(死産兒)를 총장직에 선출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생각을 하면 국가원수를 내 손으로 뽑는 ‘대통령 직선제’란 더더욱 곤혹스럽기만 하다. 한 대학의 살림을 맡는 총장이 아니라 나라의 살림을 맡아 국민의 생존과 안녕을 책임질 대통령을 뽑는데 ‘유권자 국민’은 얼마나 대선 주자의 인품이며 자질, 사상이며 이념을 알고 투표를 하는 것일까. 도대체 그걸 짧은 선거기간에 알 수가 있는 것일까. ‘정치에 의해서 먹고사는’ 정치꾼과는 달리 ‘정치를 위해서 동원되는’ 유권자 국민이 대권을 노리는 야심가의 자질이며 이념을 어디서 어떻게 알아본다는 말인가. 그걸 모르고 그냥 표를 줬다 해서 유권자 국민을 나무랄 수 있는 것일까.

선거 유세를 믿고, 눈물 흘리는 TV 화면을 보고 누구를 뽑아 주었더니 몇 년 못 가서 깡통 자질이 들통 나고 지지도가 10%대를 맴돈다 해서 누구를 탓할 것인가. 선거전에서 당당히 이기고 올라온 야심가만 탓할 수 있는가. 알지를 못하고, 본시 알 수도 없어 야심가에게 표를 몰아준 국민을 나무랄 수 있겠는가. 허물이 있다면 ‘대통령 직선제’에 있다고 한다면 잘못일까.

대통령 직선제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했기 때문에 성역이 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직선제는 국민이 쟁취하기에 앞서 국민에게 ‘강요’됐던 것이다. 그건 간접선거로 의회에서 선출된 초대 대통령이 거듭된 실정으로 국회에서 재선될 전망이 희박해지자 6·25 전란 중 피란 수도에서 온갖 무리수를 써 가며 계엄령을 선포한 가운데 기립투표로 소위 ‘발췌 개헌안’을 통과시켰던 부산 정치파동의 산물이다.

속아서 준 한표 누구를 원망하랴

국민은 피로하다. 먹고살기도 바쁘고 아이들 교육에도 진이 빠진다. 거기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선거판에서 야심가를 선볼 겨를이 없다. 게다가 이번 대선은 초장부터 피로하기만 하다. 여당은 후보자도 내놓고 있지 않은데 야당은 검증 논란으로 이미 진흙탕에 빠져들고 있다. 정답이 없는 퀴즈 쇼에 끌려온 듯만 싶다. 대선이 잘 치러질까. 나는 대통령 직선제를 거두고 국민을 좀 편안하게 해 주겠다고 공약하는 후보가 나오면 그냥 표를 주겠는데.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본보 객원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