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러시아 재향군인의날을 맞아 추코트 자치구 수도 아나디리 얼어붙은 바닷가에서 얼음낚시로 망중한을 보내고 있는 박영석 대장.
한마디로 체념이다. 월요일(26일)까지 아나디리에서 기다려야할 운명에 처한 원정대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기다릴 바에는 즐겁게 지내자. 박영석 대장이 원정대와 취재진에게 제안한 ‘놀거리’는 얼음낚시. 아나디리에 체류하는 동안 얼어붙은 바닷가로 나가 훈련을 하면서 목격한 얼음낚시를 해보자는 것. 택시를 대절해 박영석 대장과 오희준, 이형모 대원 그리고 캠프 매니저 김영선 대원과 동아일보, SBS 취재진 이렇게 9명이서 얼음바다로 피크닉을 떠났다. 얼음에 구멍을 뚫고 미끼를 매단 낚시 바늘을 드리우고 위아래로 움직여주며 물고기를 유인하는 것은 국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빙어낚시와 똑같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바다가 150cm나 꽁꽁 얼어붙어 구멍을 내기가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과 수심이 거의 20m 가까이 된다는 것.
이곳 추코트 자치구 주민들의 유일한 레저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얼음낚시. 휴일을 맞이하여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모여들었다. 옹기종기 앉아서 열심히 물고기를 유인하는 이들 옆엔 남녀를 불문하고 독하디 독한 보드카가 한 병씩 놓여있었다.
잡히는 물고기는 꽁치보다 좀 작은 녀석. 대한민국의 식도락가들답게 즉석에서 회를 쳐서 준비해간 고추장에 한번 푹 찍어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본 러시아 사람들이 웃느라 정신이 없다. 물론 야외 주방장은 제주도 출신 오희준 대원이 책임졌다.
4시간 동안 9명이 생포한 물고기는 겨우 8마리. 잡은 마릿수는 적었지만 오랜만에 ‘묶여있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다.
휴식은 오늘 하루로 끝이다. 내일부터는 얼어붙은 바다로 썰매를 가지고 가 실전훈련에 다시 돌입할 예정이다. 박영석 대장은 원래 베이스캠프지인 라블렌티야에 도착한 다음 일주일간 현지 적응 훈련을 한 뒤 베링해협 횡단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중간 기착지에서 너무나 많이 지연됐기 때문에 라블렌티야에 도착한 뒤 하루 이틀 내에 다시 짐을 꾸려 북쪽 우엘렌으로 헬기로 이동, 횡단 도전에 나서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극지 탐험이 처음인 이형모 대원의 적응력이 걱정되지만 남북극점을 함께 원정한 박대장과 오희준 대원의 경험이 이를 보완해 줄 것이다.
아나디리 (러시아)=전창기자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