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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예비신부 박숙용 씨의 혼수마련 A to Z

입력 | 2007-02-24 03:00:00

살펴보고 또 살펴보고…. 혼수의 길은 고달프다. 누구나 합리적이면서도 번듯한 준비를 꿈꾸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래도 비결이 있다면 정답은 하나. 혼수는 발품이다. 원대연 기자·장소 제공 신세계백화점

지난해 12월 결혼한 김경모 금윤경 씨의 신혼집. 알뜰하게 꾸민 두 사람의 마음이 엿보인다. 침대(왼쪽)는 헤드 없이 고급 매트리스만 놓았다. 전등 소품엔 과감히 돈을 썼다. 깔끔하게 정리된 찬장(가운데)의 그릇과 컵은 대부분 사은품. 책장(오른쪽)은 3단짜리 여러 개를 노점에서 10만 원에 구입해 고급스럽게 꾸몄다. 사진 제공 금윤경 씨


《‘결혼은 미친 짓이다.’

한때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영화 제목이다.

뜻이야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열정이건 후회건 쉽지 않은 건 틀림없다.

결혼은 그렇다 쳐도 혼수(婚需)는 확실히 미쳐 날뛴다.

혼수에 울고, 혼수 때문에 갈라서기까지 한다. 2005년 신혼부부의 평균 결혼비용은 주택마련 비용을 제외해도 양쪽 합쳐 약 4500만 원.

이것도 만만찮은데 ‘억대 혼수’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 온다.

비용 탓에 결혼이 망설여지기도 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전국 결혼 출산 동향’에 따르면 남녀 모두 결혼을 미루는 이유로 ‘혼수 등 결혼비용이 부담스러워서’를 가장 많이 꼽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렇다고 숟가락만 들고 결혼할 수도 없는 노릇.

알뜰하고 합리적이면서도 양가 모두 만족할 혼수의 묘안은 없을까.

봄은 결혼의 계절. ‘3월의 신부’가 될 꿈에 부풀어 있는 박숙용(31·사진) 씨의 혼수준비 대장정을 1주일간 밀착 취재했다. 결혼정보업체 (주)듀오정보의 고미란 실장이 고비마다 알토란 같은 혼수 노하우를 전수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중요한 의식을 앞둔 이 땅의 예비 신랑 신부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행복은 혼수순이 아니다.》

■예비신부 박숙용 씨의 혼수마련 A to Z

# 2월 10일 오전 2시

딸깍 딸깍. 마우스 클릭 소리가 심야의 정적을 깬다. 피곤하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결혼식이 3월 24일로 결정된 뒤 거의 매일 밤마다 뒤척인다. 요즘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웨프’(www.wef.co.kr). 결혼 및 혼수 정보를 교환하는 사이트다. 많은 예비신부들이 경험담과 조언을 올린다.

스튜디오 촬영이나 메이크업 정보도 여기서 구했다. 수많은 업체를 다 가볼 순 없기에 일단 마음에 드는 몇 곳에 전화를 걸어 분위기를 살폈다. 3, 4곳은 직접 찾아갔다.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니 가격 협상도 가능했다.

집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발품을 한참 판 끝에 겨우 전세를 구했다. 인터넷 정보는 틀린 게 많았다. 가격이 맞지 않거나 집이 이상했다. 먼저 지역을 정한 뒤 부동산중개업소를 활용하는 게 좋을 듯했다.

▼고실장▼

혼수정보 사이트 가입은 필수다. 결혼 관련 업체 정보가 많으니 꼼꼼히 비교하자. 메이크업이나 예복 대여 등은 사이트마다 계약한 업체가 다를 수 있다. 특히 결혼 앨범이나 예복은 직접 보고 선택해야 한다.

박 씨는 결혼 준비가 조금 늦은 편이다. 대개 3개월 이전에 시작한다. 신혼집을 미리 결정해야 혼수 품목을 짜기 쉽다. 집 규모에 맞춰 가구나 가전제품을 결정해야 한다. 치아 치료나 피부 관리도 이때부터 시작해야 효과를 본다.

혼수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보자. 혼자서 만들 필요는 없다. 인터넷 등에서 기존의 상세한 표를 구해 필요 없는 걸 지워나가는 식이 바람직하다.

# 12일 점심시간

혼수 트렌드를 살피러 백화점에 갔다. 같이 간 선배는 혼수를 백화점에서 다 했단다. 돈도 많다 싶었더니 웬걸. 상품권을 싸게 구입해 기획전 등을 이용하면 꽤 할인이 된단다. 혼수라는 사실을 증명하면 물건 살 때마다 구입금액의 일부를 상품권으로 주는 백화점도 많다.

오후엔 경기 고양시 일산 가구단지에 들렀다. 서점에서 산 잡지를 보며 스타일을 점찍어 뒀지만 고르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백화점과 똑같은 상품이 20% 이상 저렴한 건 장점. 다만 중국산 제품이 일부 섞여 있으니 잘 골라야 한단다.

가전제품은 인터넷쇼핑몰과 대형전자마트 중 어느 쪽을 이용할지 고민이다. 가격은 인터넷이 싸긴 한데, 물건을 직접 보고 고를 수 없어 솔직히 불안하다. 조그만 가전제품은 선물로 받을 예정. 친구 5명이 만든 ‘밥통계’에서 드디어 전기밥솥을 탈 차례다.

▼고실장▼

바쁜 직장인들은 백화점에서 혼수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애프터서비스나 신뢰도를 생각하면 괜찮은 방법. 혼수 할인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다. 수도권이라면 일산 가구단지는 반드시 가볼 것. 물건과 가격이 가장 다양하다. 침대 장롱 화장대처럼 중요한 가구만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는 것도 절약 방법이다. 다만 가구는 마감상태 등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전자제품을 살 때는 신랑을 데리고 가자. 아무래도 전자제품에는 남성이 강하다. 대형전자상가에서 발품을 팔면 인터넷보다도 괜찮은 가격의 물건을 고를 수 있다.

# 13일 오후 4시

며칠 전 시어머니와 큰 시누이를 모시고 한복도매시장에 다녀왔다. 색감은 예쁜데 질감이…. 싼 이유가 있었다. 씁쓸하게 돌아오다 어머니가 아시는 한복집에 가자고 했더니 반가워하신다. 가격이 비싼 편이라 터놓고 말씀을 못하셨나 보다.

한복을 맞추러 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은 좋다. 계획 초과지만 좋은 걸 오래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가족 행사마다 입어야겠다.

예단비와 꾸밈비 등은 적절한 수준에서 하기로 했다. 이불 반상기 은수저 등은 어머니께서 손사래 치셔서 생략했다. 미리 다 상의 드리길 잘했다. “너 편한 게 최고다”고 말씀해 주시는 어머니가 고맙다.

고마운 맘에 예물은 필요 없고 커플링만 하겠다고 하니 오히려 혼내신다. 남의 집 귀한 딸 데려오는데 그건 안 되신단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하나 하기로 했다.

▼고실장▼

예단은 정해진 룰은 없지만 너무 무시해선 안 된다. 집안, 지역마다 가풍과 전통이 다르다. ‘남들 하는 대로’ 식으로 편하게 생각하다 감정 상하는 일이 많다.

먼저 상의해 금액이나 물품을 정한 건 잘한 일이다. 어려운 마음에 얘기를 못하곤 하는데 대화가 중요하다. 양가 어른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는 기분이 들게끔 해야 한다.

현물 예단을 생략했다면 이바지 음식에 신경을 쓰자. 값이 비싸지 않더라도 정성스럽게. 효율성을 고려하면 친척들이 모이는 결혼 당일에 보내는 게 좋다. 시부모에게 꼭 필요할 만한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

예단비를 보낼 때 예단편지를 쓰면 어떨까. 고운 한지에 직접 써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거다. 결혼은 두 가족이 하나로 맺어지는 일. 대화와 진심이 무엇보다 중요한 게 혼수다.

# 15일 오후 8시

결혼박람회에 다녀왔다.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진 못했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다 맞는 말 같아서 더 헷갈렸다. 최근 웨딩 추세를 파악한 정도로 만족했다.

오후엔 약속했던 웨딩 컨설턴트를 만났다.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했는데 전문가 얘기를 들으니 부족한 게 많았다. 리허설을 3주 전쯤 해야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반지는 유명 브랜드 제품으로 했다. 크기는 5부 정도. 가드링(Guard Ring)까지 하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고민이 됐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브랜드가 낫다고 주변에서도 권유했다.

대신 커플링은 가드링으로 대체하고 신랑 것만 비슷한 분위기로 하나 했다. 예물을 줄인 돈으로 시계를 장만할 계획이다. 커플시계보다는 각자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신혼여행을 가니 면세점에서 사는 건 어떨까.

▼고실장▼

1년에 서울에서 열리는 웨딩박람회만 수백여 개다. 기왕이면 크고 이름난 박람회를 가는 게 좋다.

특히 미리 계획을 잘 세우고 갈 것. 업체 사람들은 그 방면 최고의 전문가다. 괜히 솔깃했다간 생각지도 못한 지출이 생긴다.

예물은 기본이 3세트지만 역시 정답은 없다. 예단처럼 조심스레 상의해야 한다. 양과 격식을 중요시하는 어른들도 있다. 박 씨처럼 실속 있게 하는 커플이 많지만 너무 자기들 편한대로 한다는 인상을 줄 필요는 없다. 미리 말씀드려 오해 없게 처신하는 게 좋다.

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알뜰 살뜰 신혼부부 실속 혼수 살펴보니

그릇 가전 나비장… 웬만한 건 선물받은 걸로 충분

《14년 연애 끝에 드디어 결혼했다. 작년 12월 결혼에 골인한 김경모(36·IT기업 근무) 금윤경(34·여·홍보대행사 레브컴 사장) 씨가 주인공이다. 둘 다 모아놓은 돈이 적은 터라 치솟는 전세금을 감당할 엄두가 안 났다. 금 씨가 결단을 내렸다. 원룸에서 살더라도 둘의 힘으로 살아보자고. 금 씨는 “남자는 여자에게 ‘풀세트’를 주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면서 “여자가 먼저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가 부모에게는 손을 벌리지 않기로 했다. 받더라도 결혼선물 개념으로 받았다. 예단과 함은 생략했다. 이들 부부의 알뜰 혼수 목록을 살펴봤다.》

○ 예물=90만 원

“장모 보석으로 사위 결혼반지 해 주면 바람을 안 피운대요.”

남편은 장모의 다이아몬드(3.5부)로 반지를 했다. 아내는 3.7부 다이아몬드를 택했다. 종로귀금속센터에서 커플링 값 20여만 원, 다이아몬드 70만 원, 세팅비 2만∼3만 원 등 총 90여만 원에 해결했다. 진주 순금 세트 등은 뺐다.

○ 인테리어=약 500만 원

▽알뜰=안방 장롱은 중고제품에 시트지를 붙였다. 소파 대신 커다란 쿠션세트를 샀다. 쿠션, 커튼, 안방 블라인드와 방석 6개를 총 80여만 원에 강남고속터미널 상가에서 샀다.

3단짜리 책장을 여러 개 쌓아 놓는 게 인기라 알아보니 70만∼80만 원이나 했다. 그래서 노점에서 합판으로 된 제품을 10만 원에 구입해 서재를 꾸몄다. 나비장은 중국에 있는 선배에게서 선물로 받았다. 중국에선 나비장을 4만∼5만 원에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침구류는 무조건 시장에서 구입하라는 게 금 씨의 조언. 백화점과 가격 차이가 크다. 그는 목화솜 이불 3세트를 160만 원에 장만했다.

침대 헤드는 사면 후회하는 아이템 중 하나. 헤드 값만 100만 원이 넘는 데다 인테리어를 바꿀 때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침대 머리 놓는 벽을 포인트 벽지로 꾸미면 나중에 바꾸기도 싶다.

주방용품은 세트를 피하는 게 좋다. 금 씨는 “살림을 해 봐야 어떤 그릇, 냄비가 필요한지 안다”면서 “전부 세트로 사 두면 십중팔구 먼지만 쌓인다”고 말했다. 찬장 속 그릇 대부분은 선물이나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다.

▽과감=시몬스 라지 킹 매트리스를 160만 원에 샀다. 숙면할 수 있고,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큰 침대가 유용하다고 해 라지 킹 사이즈를 골랐다.

전등(27만 원), TV장식장(50만 원대) 등은 까사미아에서 샀다. TV는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장식장에 투자한 것이다.

○ 가전제품=50만 원

▽TV=예산이 안 맞아 당분간 TV 없이 살기로 했다. 이를 보고 남편이 속한 봉사단체 회원들이 돈을 모아 29인치 브라운관 TV를 선물로 줬다. DVD플레이어는 남편이 쓰던 것을 가져왔다.

▽세탁기·냉장고=친정아버지가 선물로 사줬다. 단, 드럼 세탁기를 고를 때는 건조기능이 없는 게 좋다고 한다. 실제로 쓸 일이 거의 없다. 건조기능만 빼도 수십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

▽기타=가스레인지는 26만 원짜리를 샀다. 표면이 유리로 된 게 닦기가 쉽다고 해서 샀는데 써 보니 좀 더 싼 걸 사는 게 나았을 것 같다.

가전제품은 전기밥솥과 가스레인지 값만 50여만 원이 들었다. 금 씨는 “믹서 토스터 전자레인지 등 소형 가전제품은 집들이 때 주변 사람들이 선물하기 좋은 아이템이라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