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기원전 377) 초상화(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 소장·위)와 19세기 중반 세계 최초의 전신마취 수술 장면 그림(미국 보스턴 의학도서관 소장). 사진 제공 역사비평사
◇의학 오디세이/강신익 외 지음·279쪽·1만2000원·역사비평사
《우리 전통에서의 ‘의(醫)’는 학문적 체계만을 뜻하지 않는다. ‘의’는 학문(의학·醫學)과 실천적 지혜(의술·醫術)와 덕스러운 마음가짐(의덕·醫德)으로 완성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셋을 함께 녹여낼 용광로다.》
“의사는 의사야, 의료행위엔 인간적 판단은 없어. 오직 의학적 판단만 있을 뿐이야.”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의학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명대사로 회자되는 안중근(이범수)의 말이다. 하얀 가운과 냉철한 이성.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의사의 이미지는 차가움이다. 인간적 사회적 고민은 그들의 ‘하얀 거탑’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의학에 있어 철학적 가치판단 여부는 오랜 기간 논쟁거리였다. 진료자의 삶을 걸어갈 것인가, 인간과 시대의 철학을 녹여낸 ‘의철학자’의 삶을 걸어갈 것인가. 일단 공동 저자인 4명의 인문학자와 의학자들은 후자의 손을 들어 줬다. 이 책에는 시대의 고민을 지고 가는 의학자들의 기록이 담겨 있다.
1930년대 조선인 양의와 한의 사이에 벌어진 ‘의학 논쟁’은 저자들의 의도가 잘 녹아 있는 이 책의 백미다. 1934년 대한제국 관립 의학교 3회 졸업생 출신인 장기무가 근본적인 병을 고치는 데에는 한의학이 뛰어나다고 주장해 논쟁은 시작된다. 이에 경성제국대 의학부 박사 출신인 정근양이 과학적 방법이라는 서양의학의 우월성을 들어 반박했고 이후 약학자 이을호, 영문학자 조헌영이 뛰어들면서 장장 9개월간 논쟁이 진행됐다. 보건의료를 전공한 저자는 이 논쟁이 이렇게 오랜 기간 지속되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단순한 의학적 우월 시비 이상의 질문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1930년대 한의-양의 논쟁 속에는 값비싼 진료비 때문에 일반인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서양의학이 과연 조선에서도 참의술인가에 대한 질문, 더 나아가 개항 이후 강요받아온 서양의 이른바 ‘선진’ 문물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시대적 고민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17세기 이탈리아의 라마치니를 소개한 부분도 흥미롭다. 라마치니는 1713년 ‘노동자의 질병’이라는 저서로 노동자를 생각하는 노동의학의 초석을 놓은 의학자다. 저자는 후반부에 1970년대 ‘근로기준법’을 외치며 몸을 불사른 전태일과 1988년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다 수은 중독으로 15세에 사망한 문송면 군의 사례를 소개하며 의학과 사회 시스템의 고민이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암시한다.
후반부에 소개한 ‘뉘른베르크 강령’의 도입 과정은 ‘의료행위엔 인간적 판단은 없어’라는 ‘폼’ 나는 대사가 얼마나 거대한 비극을 불러올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의사들은 ‘광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과학의 진보와 난치병 치료, 국익 수호 등의 ‘성스러운’ 목적을 위해 연구했을 뿐이라며 철학 없는 의학의 맹목적 위험성을 꼬집는다.
다소 무거운 주제도 있지만, 주술에서 의학으로 발전한 동아시아 최고(最古) 의학서적 ‘황제내경’을 소개하고 데카르트 철학을 통해 의학을 설명하며, 별을 보고 병의 원인을 진단한 중세 유럽의 의사 등 재미있게 접근할 만한 사례들도 풍부하게 담겨 있다.
이 책의 결론은 철학적 위기에 빠진 의학을 구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의 수혈이 필요하다는 것.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만 있고 ‘정신’은 없다”는 저자들의 통렬한 일갈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의사들의 파업투쟁,
의-약 분쟁, 양의-한의 다툼 등을 통해 기술자로 전락한 의사들의 현실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과연 의사란 어떤 존재인가를 다시금 묻는다. 의학적 기술만 익히고 그가 속한 시대의 고민을 소화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는 저자들의 ‘진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