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과 글을 일일이 반박하자니 솔직히 독자가 지겨워할까 봐 조심스럽다. 그래서 요즘에는 대통령 발언이 오버하는 감이 들어도 국민의 정신건강을 고려해 웬만하면 외면하려 한다.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은 어제 재외공관장 회의 연설에서 노무현 정부 4년에 대해 “그다지 큰 잘못이 없다”면서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 탓을 했다.
▷이 실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사설 논조의 98%가 긍정적 희망적이었으나 현 정부에서는 89%가 부정적 비판적이라는 조사를 인용했다. 언론자유 말살 상태이던 5공화국 때와 비교하는 의도는 독재정권의 언론통제가 그립다는 뜻인가. 5공 때 KBS에 근무했던 이 실장은 ‘땡전 뉴스’를 하던 방송사 안에서 독재정권을 향해 외마디 항변이라도 해 보았는지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대통령 취임사준비위원장을 지낸 지명관 씨는 “노 대통령은 언론자유를 어떻게 깨 보려고, 자기 마음대로 만들려 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현 정부의 언론정책을 조금이라도 반성할 생각은 없나.
▷부동산 버블이 세계적 현상이라는 그의 변명도 정책 실패를 호도하는 둔사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서울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 값이 무려 300%까지 뛰었는데 이런 수준의 집값 폭등 사례가 한국 말고 또 있는지 공관장회의에 참석한 대사들에게 확인해 보기 바란다. 다른 통계는 제쳐 두더라도 재정경제부 조사에 따르면 작년에 자영업자 4만8000명이 단순 노무자로 전락했다. 그런데 이 실장의 연설문에는 눈을 씻고 봐도 대통령을 잘못 보좌했다는 말이 없다.
▷이 실장은 이 연설문을 ‘밤새 직접 쓴 육필원고’라고 소개했다. 심야에 작성한 문장은 격정에 흐르거나 자기중심 논리에 빠지기 쉽다. 해럴드 윌슨 전 영국 총리는 ‘지도자의 가장 큰 재산은 밤에 잠을 푹 잘 수 있는 능력’이라는 말을 남겼다. 밤에 잘 자야 낮에 맑은 정신으로 국정을 살필 수 있다. 심야에는 대통령이 인터넷도 안 하고, 비서실장이 육필원고도 안 쓰는 게 국민을 위해 좋을 것 같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