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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연극‘반성’ 김태웅“섣부른 용서에 경종 울리고 싶어”

입력 | 2007-02-28 02:59:00


“용서? 나 당신 다 용서했어요. 여보, 이제 당신이 나를 용서해 줄 차례예요…. 우리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이 모든 죄악에서 벗어나면….”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자 김태웅(42) 씨가 연출을 맡은 연극 ‘반성’의 마지막 장면이다. 남편의 참회와 반성에 대한 답으로 아내는 모두의 파멸을 선택한다. 배우들 뒤로 보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화 ‘최후의 만찬’은 거룩하다기보다 왠지 섬뜩하다. 다음 달 2일 시작하는 공연을 앞두고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한 지하 연습실에서 마무리 작업에 한창인 김 씨를 만났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용서와 화해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습니다. 가족이면 무슨 죄를 저질러도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는 가족주의에 반발하는 메시지도 담았죠.”

그는 2000년 ‘왕의 남자’의 원작인 연극 ‘이(爾)’로 동아연극상 작품상 등을 수상하며 공연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5년 말 개봉한 ‘왕의 남자’가 1200만 관객을 기록한 데다 지난해 뮤지컬로 각색한 ‘이’를 그가 연출하면서 대중적인 관심도 높아졌다. ‘반성’은 3년 만의 작품으로, 김 씨가 ‘왕의 남자’로 유명해진 뒤 선보이는 첫 연극이다.

“전작 때문에 흥행이나 작품성에 대한 부담이 큽니다. 잘되면 물론 좋지만, 완전히 망해서 기대치를 0으로 떨어뜨리면 차라리 마음은 편할 듯해요.”

‘반성’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노부부와 사업에 실패해 미국으로 도망간 장남, 연극과 영화판에 뛰어들어 망한 둘째 아들, 반정부 시위자로 고문을 받아 불임 여성이 된 막내딸 등 한 가족의 얘기다. 집안의 가장인 갑성은 친구 은봉의 아내 명자를 짝사랑하다 은봉을 살해하고 그녀와 결혼해 삼남매를 낳는다. 명자는 비밀을 털어놓고 반성하는 갑성과 아버지의 생일에 모여 싸움만 하는 자녀들을 비극으로 이끈다.

“매듭부터 잘못됐기 때문에 그 결과물인 자녀들까지 없애는 겁니다. 가족의 몰살은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원죄에 대한 처벌을 상징하죠.”

그는 “극중 둘째 아들은 나를 투영한 캐릭터”라며 “믿음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기독교 집안의 설정과 가족 간의 불화 등은 실제 내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차기작도 기독교 집안의 갈등을 그린 비극을 준비하고 있다며 “오늘날 변질된 종교적 ‘사랑’의 의미와 배타주의를 공격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서 연산군과 광대의 동성애를 그린 데 이어 반가족주의 반미주의 반기독교주의 등 윤리적이고 정치적 논란이 예상되는 주제를 함축한 ‘반성’을 만든 이유가 ‘파문’을 좋아하기 때문이냐고 물었다.

“작가는 위험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입니다. 작품을 통해 파문을 일으키고 싶은 욕망이야 늘 있죠. 논란은 각오하고 있지만 결론은 관객의 몫입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