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인류의 진보를 역설하는 진보주의자들, 농민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체하면서 실은 농민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은 단지 자신의 모순을 감추는 데 급급하여 궤변만 늘어놓고 있었다.》
대중을 보듬은 혁명가의 영혼
진보와 혁명, 한때 청년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던 이 단어들은 어느덧 케케묵은 낡은 의미가 돼버렸다. 혼신의 힘을 바쳐 조금 더 살 만한 세상, 모두가 평등하게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열정은 이제 불가능한 공상이 돼버렸다. 물론 자신이 진보주의자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진보는 ‘그들만의 리그’에서나 통용되는 얘기일 뿐 대중의 가슴을 파고들지 못한다.
크로포트킨이 자서전에서 기록하는 시대는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와 맞닿아 있다. 우리에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속담이 있다면, 그 당시 러시아에는 ‘자기 이마로 돌담을 부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속담이 널리 퍼져 있었다. 사회의 모순을 목격하고도 눈을 돌리는 지식인들이 대다수였다. 그나마 비판적인 지식인들도 자신들을 따르라고 외칠 뿐 대중 속에서 그들과 함께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이런 시대에서 크로포트킨은 러시아 명문 귀족의 작위와 젊은 나이에 쌓은 지리학자로서의 명성을 포기하고 혁명가의 길로 나섰다. “내가 이 고상한 정서의 세계에서 생활하기 위하여 소비하는 모든 것은 바로 땀 흘려 농사지어도 자식들에게 빵 한 조각 배불리 먹일 수 없는 농민들에게서 빼앗은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은 크로포트킨을 투옥과 망명 생활로 이끌었다.
러시아혁명이 성공하고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크로포트킨은 억압을 겪으며 혁명가로 살아야 했다. 크로포트킨이 걸었던 길은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대표되던 사회주의의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크로포트킨이 신뢰했던 것은 과학적인 이론이나 혁명조직이 아니라 대중이었다. 대중이 스스로 자신의 욕구와 목소리를 내고 서로 학습하며 시민으로 성장하는 공화국, 그것이 크로포트킨의 이상이었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제도보다 선하다”고 믿었던 크로포트킨에게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이념이나 제도보다 서로 보살피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었다.
왜 우리는 자서전을 읽을까? 아마도 그것은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대를 온몸으로 헤쳐 간 인물의 삶을 통해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크로포트킨 자서전’은 시대와 교감하려면 합리적인 지성만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하려는 영혼을 품어야 한다고 알려 준다. 자신의 내면세계로 도피하는 영혼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고 때론 그 시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영혼 말이다.
그런 영혼의 무게를 담지 못했기에 사회주의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사회주의가 대변한다고 주장했던 그 대중이 사회주의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사회의 변화와 진보를 추구해 왔던 사람들의 정신은, 항상 대중과 함께하고자 했던 그들의 영혼은 아직 현실에 뿌리내려 있다. 600쪽을 조금 못 채우는 이 두꺼운 한 권의 책 속에 그 소중한 영혼의 싹이, 아직 인류가 걷지 않은 가려진 길이 숨어 있다.
하승우 제3섹터연구소 연구원·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