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을 맞은 패션의 도시 파리가 최신 컬렉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세계의 유행을 선도하는 이 도시의 춘계 패션쇼에서 소개되는 의상은 벌써 계절을 훌쩍 뛰어넘어 올겨울과 내년을 겨냥하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된 이번 컬렉션에서는 특히 한 명품 브랜드가 한국의 탤런트 송혜교 씨의 이름을 단 가방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한국 대중 스타의 이름을 단 명품 브랜드 제품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한류 열풍의 가능성을 선진 패션시장에서도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지난해 10월 파리의 바카라 박물관에서는 한국과 프랑스의 패션디자이너들이 한자리에 모인 ‘한-프랑스 공동 패션 이벤트’가 열렸다. 패션의 본고장인 파리에서 두 나라 디자이너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패션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뭉클했다.
세계적으로 톱클래스에 드는 프랑스 디자이너들의 작품에 비추어 같은 무대에 오른 한국 디자이너들의 작품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최근 많은 한국 디자이너가 세계무대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때 한국에서도 머지않아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가 탄생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냉정하게 당장의 현실을 살펴보면 솔직히 아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려워진다. ‘한국인 송혜교의 이름을 내건 외국 패션’에서 시선을 돌려 ‘한국의 패션’을 찬찬히 돌아다보자. 한국 패션의 영향력이 몰라보게 커지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아직 세계적으로 뚜렷한 ‘붐’을 형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파리 컬렉션에 참가한 일본 디자이너는 16명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4명에 그쳤다. 일본은 수적으로 우위였을 뿐 아니라 콤 데 가르송, 미야케 이세이, 야마모토 요지 등 디자이너 인지도에서도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일본인 디자이너의 능력이 한국인 디자이너보다 뛰어나서일까. 반드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재 파리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비중 있는 디자이너로 대접받고 있는 터키 출신 디자이너 후세인 살라얀이 좋은 예다. 살라얀의 성공은 그가 지닌 재능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면에는 터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파리도 ‘세계의 패션 1번지’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 도시에는 젊은 디자이너를 집중 육성하는 ‘의상조합’이라는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필요 자금을 100% 유명 패션 관련 기업의 지원으로 충당한다.
한국도 기업과 정부가 힘을 모아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면 어떨까. 막 가능성의 싹을 틔우고 있는 한국 패션의 개화기를 크게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흔히 ‘가벼운 문화’로 여겨지는 패션의 영향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난해 가을 방문한 파리는 추계 컬렉션으로 온 도시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파리 시내 곳곳에 패션의 물결이 흘러넘쳤다. 컬렉션을 보기 위해 관람객이 몰리는 바람에 교통대란이 빈번히 발생했다.
이동 중에 유난히 차가 막혀 알아보니 근처에서 유명 브랜드 루이비통의 패션쇼가 열리고 있었다. 8일 동안 10여 곳에서 100회 이상의 패션쇼가 열리는 파리였기에 생겨난 풍경이다.
이제 세계적인 패션 행사인 밀라노, 뉴욕, 파리 컬렉션이 차례로 막을 내린다. 곧이어 서울과 도쿄 등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컬렉션이 개최될 예정이다.
서울 컬렉션이 명실 공히 세계적인 컬렉션과 견줄 만한 명성을 얻으려면 체계적인 인적자원 육성 시스템을 먼저 구축해야 한다. 결국 사람이 관건이다. 기성 유명 디자이너 외에 가능성 있는 신인이 자꾸 발굴될 때 ‘패션 코리아’의 꿈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원대연 한국패션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