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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링해협 횡단/3월2일]"라브렌티야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다"

입력 | 2007-03-03 13:17:00

아나디리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원정대원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1600만명이 거주하는 세계적 거대도시 모스크바에서도 1만2000여명이 사는 추코트자치구 수도 아나디리에서도 좀처럼 접하기 힘들었던 현대인의 생명줄같은 인터넷을 인구 1000명이 채 안되는 유라시아대륙 최북동단의 라브렌티야에서 접속할 수 있게 됐다.

이곳 주민들에게 '주민수가 얼마나 되냐?'고 물으면 OOO명이라는 대답대신 '군사지역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답을 받는다. 그만큼 주민들이 평상시 보안자세가 투철하다. 군사지역이란 특수성 때문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덕을 볼 때도 있다. 군사적 이유로 속도는 형편없지만 인터넷이 가능하다나?

이곳 인터넷은 물론 전화선을 사용한다. 이곳은 전화를 받는 것은 자유이지만 역시 보안과 기술적 문제로 마을 외에 외부로 거는 전화는 우체국에 가서 신청을 한 뒤에야 연결된다. 인터넷을 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봐서는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보안상의 문제가 관건인 것 같다.

이곳 라브렌티야에서 인터넷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우리 원정대의 안내를 맡은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요트 탐험가 니콜라이도 인터넷 유무를 묻는 원정대에게 "시골에서 인터넷은 무슨..."이라고 했었다.

생명선 발견은 정말 우연이었다. 러시아에 16년째 거주해 러시아어가 모국어 수준인 김영선 대원이 원정대가 베이스캠프로 쓰고 있는 아파트(사실 규모나 시설로 보아 아파트라고 부르기에 민망하다) 옆집을 방문했는데 그 집 주인이 여유롭게 인터넷 서핑을 즐기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인터넷 연결을 주장했다. 대답은 "외부인은 안된다"였다.

하지만 한국 사람의 장점이 무엇인가? "너희는 되고 우리는 왜 안돼? 이렇게 반감금해놓고... 그럼 빨리 베링해협 건너게나 해줘!"라고 귀챦게 하자 일단 2000루블(약 8만원)을 우체국에 예치시켜놓고 니콜라이가 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인터넷을 개통시켜줬다.

그동안 위성전화기를 통해 한국과 소식을 어렵게 주고받던 취재진이나 원정대원들에겐 정말 꿈과도 같은 일이 현실 속에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독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원정일지를 읽고 있었다. 물론 글의 가치나 수준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보내는 통신비가 그렇다는 얘기다.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원정일지는 필자인 동아일보 전창 기자가 담당하고있다.

박영석 대장의 남극점 원정(2003년~2004년) 북극점 원정(2005년)과 에베레스트 횡단 원정(2006년) 때도 동행해 원정일지를 맡아왔다.

하지만 이처럼 통신 사정이 좋지 않긴 남극점 이래 처음이다. 남극점 원정당시에는 원정대가 남극대륙에서 극점을 향해 출발하지 전까지만 담당하고 이후엔 이치상 대원이 맡아 썼는데 위성전화로 동아일보 파일전송프로그램으로 송신하는 식이었다. 북극점 때는 박영석 대장이 위성전화로 상황을 알려주면 베이스캠프인 캐나다 레졸루트 베이스캠프에서 받아 이를 인터넷으로 동아닷컴에 자유롭게(?) 보냈다. 에베레스트 원정을 가서는 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돼 무선인터넷 수준의 속도를 자랑하는 데이터 전송 전용 위성 단말기를 이용해 인터넷 망을 통해 송고가 가능했다.

그런데 이번엔 다시 남극 수준이다. 아니 그보다도 못하다. 이유는 데이터 전송 전용 위성 단말 시스템이 워낙 최신이다보니 위성이 지구상에서 사람이 가장 적게 사는 베링해협을 중심으로 커버를 하지 못한단다.

그래서 위성전화를 사용하는데 이게 참 황당하다. 위성과 위성이 교차되는 순간에 단락 현상이 일어나 음성통화 할 때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데이터 전송때는 끊어지게 된다. 얼마나 자주 끊어지냐면 지난달 20일 원정일지 1개와 사진 1장을 보내는데 무려 312통화를 해야만 했다. 통화가 연결되기만 하면 무조건 1.5달러의 요금이 부과된다. 속도는 30byte/s으로 100kbyte짜리 압축한 사진한장 보내는데 10분이상 걸린다. 결국 이날 하루 단순히 통화 접속하는데만 약40만원, 실제 송고하는데 10여만원 등 50만원이나 들었다.

다른 날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더구나 위성전화는 유리창 안에서는 전파가 잘 잡히지 않기 때문에 실외로 나가야한다. 영하 30도 이하인 시베리아 벌판으로 노트북 컴퓨터와 위성전화를 들고나가 벌벌 떨며 몇시간 동안 송고를 해야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애로점은 워낙 기온이 낮아 배터리가 금방 떨어져 마치 요실금 걸린 사람처럼 노트북과 전화기를 들고 실내외를 들락날락해야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해결됐으니 얼마나 행복감에 빠져들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맞기겠다. 날개를 단듯 기뻐하기는 SBS 취재진도 마찬가지다. SBS에서는 이번 원정에 교양국 부국장을 단장으로 프로듀서 2명과 보도국 기자 1명 등 4명의 취재진이 동행했는데 그동안 통신 문제로 단 한번도 본사에 영상을 보내지 못했다. 이곳 인터넷이 워낙 속도가 느려 1분30초짜리 영상을 보내는데 12시간 이상 걸리지만 그래도 감격스러워하는 눈치다.

파티라도 하고 싶지만 원정대 발목이 잡혀있는 지라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원정대의 사정은 달라진 것이 없다. 러시아 국경수비대는 미국 쪽 국경수비대의 공식 레터가 도착하지 않으면 출국 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어 원정대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대행을 맡고 있는 드미트리 슈파로가 모스크바에서 군고위층을 만나 설득을 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내일(3일)은 원래 원정대가 베링해협에 발을 들여놓기로 했던 D-Day. 얼마나 더 지체될 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앉아만 있다가 시간을 놓쳐 바다의 개수면이 늘어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라브렌티야 (러시아)=전창기자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