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발굴 공화국’으로 불릴 만하다. 현 정부가 균형발전 명목으로 ‘전국 개발사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전국 각지에서 문화재 발굴 조사가 급증하고 있다. 사업 시행자는 혹시 땅속에 묻혀 있을지 모르는 문화재의 훼손을 막기 위해 먼저 발굴조사를 하도록 문화재보호법에 규정돼 있다. 지난해 발굴조사는 1300건으로 1999년 331건의 3.9배로 늘었다.
▷조사 규모도 놀랍다. 충남 연기 공주 지역에 들어서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경우 2200만 평이 발굴조사 대상이다. 광복 이후 최대의 국토개발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고고학계는 폭주하는 발굴조사 요청에 즐거운 비명이다. 1990년대만 해도 고고학계의 발굴조사는 연간 100∼200건에 불과했다. 그중 상당수는 순수한 학술연구 차원의 발굴조사였다. 하지만 최근의 발굴조사는 정부가 주도하는 전국 파헤치기식 개발 붐에 따른 것으로 고고학계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물량이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발굴 인력이 크게 부족할 수밖에 없고 이는 ‘부실 발굴’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여 놓았다. 시행기관들은 가능한 한 빨리 발굴조사를 마쳐야 공사에 착수할 수 있기 때문에 학자들을 재촉하기 일쑤다. 연간 수천억 원에 이르는 발굴자금이 고고학계에 유입되면서 ‘발굴조사는 복마전’이라는 소문이 나돈 지도 오래다. 최근 고고학자 2명이 8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교수는 발굴비용을 빼돌려 아파트를 구입한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대부분 고고학자들은 순수한 학문적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다. 비리를 저지른 사람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겠지만 ‘개발’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가난한 인문학자들까지도 하루아침에 ‘돈의 노예’로 전락시킨 듯해 안타깝다. 고고학계는 자정(自淨)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공공 차원의 발굴 전담 기관을 만들어 집행 과정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효성이 불분명한 개발사업에만 열을 올리고, 사전에 비리를 막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