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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통일 시종 낙관… ‘믿는 구석’ 있었나

입력 | 2007-03-05 03:00:00

평양의 ‘테이크아웃’ 남북 장관급회담 남측 대표단이 방북했던 2일 평양 창광거리의 간이 음식판매점 앞에 북한 주민들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 판매점에서는 군밤과 군고구마 등을 판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일 평양에서 끝난 제20차 남북 장관급회담과 관련해 남북 간에 이면합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번 회담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에 쌀과 비료를 언제, 얼마만큼을 무슨 조건으로 주느냐였지만 정작 회담 후 나온 공동보도문엔 그에 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궁금증은 남측 수석대표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통해 증폭됐다. 이 장관은 회담을 끝내고 서울에 돌아온 뒤 대북 쌀, 비료 지원의 양에 대해 “비료는 30만 t, 쌀은 40만 t이다. 양측이 합의한 게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북한의 요구량을 밝힌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남북 간에 ‘별도의 합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남북은 막후에서 과연 무슨 얘기를 나눈 것일까.

▽“장관급회담 개최 합의=쌀, 비료 지원 약속”=이 장관은 평양 체류 중 여러 차례 “서울행 비행기는 반드시 제시간에 뜰 것”이라며 회담 결과를 시종일관 낙관했다.

회담이 한창 진행 중이던 1일에는 “북핵 실험이라는 엄청난 사태를 겪었지만 양측 모두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려고 노력하고 있다. 큰 틀에서 합의에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같은 ‘자신감’의 근거는 결국 정부가 북한에 쌀과 비료를 주기로 일찌감치 마음먹고 북측에 이를 확약했기 때문이었을 개연성이 높다.

남북 회담에 관여했던 전직 고위 당국자는 “쌀, 비료 지원이 남북관계의 주요 동인(動因)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난달 15일 개성에서의 장관급회담 실무접촉에서 장관급회담 개최에 합의하는 순간 이미 쌀, 비료 지원에 사실상 합의해 준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는 일반적으로 봄과 가을로 나눠 지원하던 비료 30만 t을 이번엔 ‘즉각적으로 한꺼번에’ 지원하기로 북측에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 회담이 깨질 우려는 없었던 셈이다.

▽지원에 대한 공감대와 ‘이면합의’ 사이=이 장관의 ‘쌀, 비료 지원 합의’ 발언은 그동안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이뤄져 온 막후거래를 처음 공개한 것일 수 있다. 북측은 매년 장관급회담에서 쌀 40만∼50만 t과 비료 30만∼35만 t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제15차 장관급회담 공동보도문에 ‘남측은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북측에 식량을 제공한다’고 언급한 것 외에 정부는 장관급회담을 통해 쌀, 비료 지원을 공개적으로 약속한 적이 없다. 이 문제는 장관급회담 이후 열린 적십자회담과 경추위를 통해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실제론 장관급회담에서 사실상 합의한 뒤 실무 논의를 위해 별도로 요식적인 회담을 열어 왔을 개연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쌀과 비료 지원은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 남북협력기금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장관이 이를 ‘합의’하고 왔다면 명백한 월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대북 지원의 대가로 정부가 북에 정상회담을 타진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한나라 “李통일 고해성사하라”▼

한나라당은 4일 남북 장관급회담의 이면 합의 의혹에 대해 “대북 지원을 밀실 야합으로 합의했다면 짜고 치는 것이요, 대국민 배신행위다”면서 “정부는 진실을 밝히고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성직자답게 고해성사하라”고 촉구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