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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본·색?… ‘골수 매파’ 성향 노골화

입력 | 2007-03-05 03:00:00


취임 이후 아시아 외교와 국내 문제에 유연한 태도를 보여 온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일본 총리의 매파 성향이 되살아나고 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미국 하원의 결의안 채택 추진을 계기로 아베 총리는 화장을 지우고 ‘본색’을 드러내는 듯하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총리 홍보담당보좌관은 4일 한 민영 TV의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베 총리가 1일 군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을 부인한 것이 취임 직후 국회에서 밝힌 내용과 다르지 않다면서 “(총리는)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담화를 확실히 계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0월 초순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군 위안부 문제 개입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방침을 밝힐 때도 “좁은 의미의 강제성에 관해서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것이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좁은 의미의 강제성과 넓은 의미의 강제성의 차이를 “‘집에 몰려가 끌고 간 것’과 ‘가고 싶지 않았지만 (가야만 했던) 그런 환경이었다는 것’ 사이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1일 “강제성을 증명할 증언이나 입증된 것이 없다”고 말한 것과 자구(字句)상 표현은 유사하다.

이에 따라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의 견해가 바뀌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같은 말도 당시와 지금의 말은 그 의미와 파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취임 전 ‘골수 매파’ 행보를 해 온 아베 총리가 취임 직후엔 고노 담화를 원칙적으로 계승할지에 초점이 모아졌던 데 비해 지금은 미국 의회까지 나서 진솔한 사죄를 요구하는 쪽으로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고노 담화의 수정 움직임을 보여 온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모임’을 두둔한 사실은 ‘아베 총리의 변신은 전술적인 것으로 처음부터 한계가 있는 것’이라는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아베 총리는 이 모임의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설립 주역이다.

아베 총리의 본색 드러내기는 국회 운영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여당인 자민당은 2일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2007년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 데 이어 3일 오전 3시 52분경 중의원 본회의에서 찬성 다수로 가결시켰다.

심의 시간은 66시간 반으로 1989년 이후 가장 짧았다. 중의원 본회의에서 새벽에 예산을 통과시킨 것은 46년 만의 일이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내각이 이처럼 예산안 처리를 서둔 목적은 개헌에 꼭 필요한 ‘국민투표법’ 심의 일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헌법기념일인 5월 3일까지 국민투표법을 통과시키도록 지난달 자민당에 지시를 내렸다. 또 1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헌법개정 절차를 정하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면서 “60년 동안 방치해 온 책임을 확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사히신문은 “(7월로 예정된) 참의원선거까지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어도 방법이 없다”고 주위에 말해 온 아베 총리가 변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