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봉선 씨의 ‘국화’. 사진 제공 학고재
사군자는 동양화의 기초라서 화가들이 정식으로 전시하기도 쑥스럽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학고재에서 20일까지 열리는 ‘문봉선 매란국죽’전은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간다. 현대적인 동양화로 잘 알려진 중진 화가 문봉선(46) 씨의 사군자 전시회다.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그림 120여 점이 관객을 맞는다.
전시회 작품은 문 씨가 15년 전부터 그린 것이다. 너무나 잘 알려진 사군자이지만 중국이나 일본 것과 구별되는 그림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생각에, ‘우리 사군자’를 그리고자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고 한다. 비슷비슷한 듯 보이지만, 우리 매화는 일본 것보다 순이 길고 우리 난초는 중국 것보다 잎이 길쭉하다. 머릿속에서 상상한 사군자가 아니라 직접 관찰한 매란국죽을 그리기 위해 문 씨는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난초와 대나무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짧게 피다가 지는 매화와 사군자 중 가장 그리기 어렵다는 국화가 문제였다. 10여 년 동안 봄마다 전남 순천시 선암사와 광양시 다압면에서 일주일씩 머물면서 매화를 보다가 왔다. 영종도에 흐드러지게 핀 국화를 뜯어다가 가마니에 담아 와서는 수없이 사생을 했다고 한다.
작고 여리면서도 꿋꿋한 매화, 우아하고 그윽한 잎이 잘 표현된 난초, 만추의 넉넉함이 풍성한 꽃잎에 담긴 국화, 가늘고 단단한 줄기에서 단호한 기개가 느껴지는 대나무…. 흔히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무심했을 법한 사군자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될 듯싶다. 02-739-4937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