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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홍찬식]학부모한테서 등 돌린 정치인들

입력 | 2007-03-06 19:43:00


국민은 정치인들이 학부모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각 정당은 입버릇처럼 교육 수요자를 내세워 왔다. 공교육 내실화, 교육경쟁력 강화 같은 ‘솔깃한 약속’들이 모든 정당의 기본 정책 안에 들어 있다.

정말 그럴까. 국민 82%가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교원평가제는 올해 506개 학교에서 시범 실시되고 내년에는 전국 학교에 도입될 예정이다. 우리 교육에 변화의 바람이 일 것으로 기대하는 학부모가 많겠지만 아직 속단은 이르다.

정당들, 교원평가제 외면

교육인적자원부가 올해 시행하는 교원평가제는 말 그대로 시범 실시다. 법적 근거 없이 정부 재량으로 한번 해 본 것에 불과하다. 내년부터 전면 실시되기 위해서는 법으로 명시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학부모 편인 게 맞는다면 정당들이 앞 다투어 교원평가제 입법에 나서야 정상이다.

그러나 어제 끝난 국회에서 교원평가제는 법제화되지 못했다. 교육부가 제대로 된 평가시스템이라고 할 수도 없는 ‘반쪽짜리 법안’을 정부 입법으로 내놓았으나 정당들은 이에 대해서마저 미온적이었다.

국회 입법으로는 유일하게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발의했다. 열린우리당 민주당 민주노동당은 관련 법안을 내놓은 적이 없다. 특히 민노당은 정부의 교원평가제 실시에 아예 반대하고 있다.

민노당 최순영 의원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교원평가제는 교육 실패의 책임을 교원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라며 “교원평가보다 중요한 것이 학교 자치이며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가 먼저 법제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의견은 교원단체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판박이처럼 일치한다. 교육계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이 전교조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민노당이 교육계의 약자인 학생 학부모를 외면하고 힘센 전교조 편을 들고 있는 것은 ‘사회적 약자 대변’과 거리가 멀다.

정치인들의 소극적인 태도는 교원단체들의 조직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전체가 똘똘 뭉쳐 교원평가제에 반대하는 교원단체에 비하면 학부모 집단은 구심점이 없다. 이익단체의 목소리가 커지는 대통령선거가 연말로 다가왔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교원평가제 법제화는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에서도 정치인들이 학부모 편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종교계 인사들이 삭발하고 거리에 나서자 열린우리당은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일부 사학만 ‘조금 봐주겠다’는 식이다. 하지만 사학법의 최대 피해자는 학부모 학생이다. 만약 이념적 성향이 강한 외부 세력이 개방형 이사제를 통해 사학에 끼어들어 온갖 문제를 만들어 낸다면 정상적인 교육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도 전교조 가입 교사가 많은 학교는 학부모들의 ‘기피 대상 학교’다. 정치인들은 종교계와 교원단체만 무서워하지 학생 학부모는 별 안중에 없다는 얘기다.

2400만 명 이기는 40만 명

초중고교생은 800만 명에 이른다. 학부모까지 합치면 2400만 명이다. 교원은 40만 명에 불과하다. 40만 명이 2400만 명을 누르는 현실이다. 교원단체들과 정치인이 합작해 온 결과가 현재의 ‘망가진 교육’이다. 그럼에도 반성 없이 서로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우기고 있다.

국내에 학부모단체가 여럿 있지만 너무 이념화 경직화되어 있다. 교원단체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학부모 조직은 학부모를 대변하는 단체가 아니다. 정치인들이 두려움을 느낄 새로운 학부모 조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역사를 왜곡한 소설 ‘요코 이야기’의 교재 사용을 중단시킨 건 미국의 학부모단체들이었다. 영국에선 학업성취도가 낮은 공립학교를 학부모단체에 맡겨 운영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교육 수요자들이 주인 대접을 받지 못하는 한 교육 문제의 해결은 멀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