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12개 국가에서 유로화가 통용되기 시작한 지 5년이 지났다.
올해 슬로베니아가 유로존에 가입해 13개 국가로 늘었다. 12개 국가가 단일 통화를 공식적으로 출범시킨 것은 1999년 1월. 그로부터 150억 유로어치의 지폐와 520억 유로어치의 동전을 만드는 데 3년이 걸렸다. 그렇게 해서 2002년부터 사람들이 실제 생활에 유로화를 사용했다.
5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기존 자국 통화에 대한 추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과거에 사용하던 지폐와 동전에 향수를 느낀다. 5년이라는 짧은 역사의 유로에 비해 이전 화폐는 더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1360년에 도입된 프랑스의 옛 화폐 ‘프랑’ 역시 남다른 역사가 있다. 1360년대 초 장 르봉 왕이 영국인들에게 붙잡혔을 때의 일이다. 영국인들은 왕을 풀어 주는 조건으로 300만 에퀴(귀금속 2.5t에 해당하는 액수)의 몸값을 요구했다. 프랑스의 장인들은 귀금속을 마련하면서 금속에 왕의 얼굴과 ‘프랑(franc)’을 새겨 넣었다. 프랑은 ‘자유롭다’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간직해 유럽인들은 자국 통화를 그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늘 유로화와 비교한다.
유로화 사용 5주년을 맞아 수많은 설문조사가 실시됐다. 대부분의 조사에서 유럽인들은 이 유럽 공동 화폐를 반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조사에선 절반이 넘는 응답자가 ‘유로화 채택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대답했다. 특히 독일에선 58%가 마르크화의 부활을 희망했다. 노동자들은 80%가 마르크화를 선호했다.
유로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화폐가 교환 수단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화폐는 그것을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같은 공동체에 속했다는 소속감을 갖게 하는 도구라는 얘기다.
물론 유로화가 도입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유럽연합(EU)에 대한 소속감을 촉진하려는 것이었다. 소속감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지폐 도안은 신중하게 결정됐다. 특정 국가의 상징물이 하나라도 들어가면 차별 시비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지폐에 그려진 도안은 다리, 창문, 열린 문 같은 것들이다. 의사소통, 오픈 마인드, 협력 등을 의미한다.
유로화 도입이 유럽인들의 소속감을 어느 정도 높였을까. 78%의 유럽인은 단일 화폐가 유럽 공통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별 기여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도 12개 국가가 같은 화폐를 쓰고, 같은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은 큰 성공 요인인 동시에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유로화 도입으로 가장 좋아진 점은 가격이 안정됐다는 점이다. 유로화 도입 이후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2% 정도다. 또 유로화의 낮은 이자율은 기업인들에게 도움이 된다.
환전과 환리스크 비용이 사라져 유럽 내수시장이 크게 발전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수출과 수입의 25%는 유로화로 결제된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들의 불만이 여전히 높은 것은 정책적으로 장점을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12개 국가가 엮여 있다 보니 정책에 통일성을 이끌어 내기 힘들었다. 특히 국가 간의 예산 협력 문제에는 늘 잡음이 있었다.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비하면 유로화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유로화 사용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달러화에 이은 두 번째 기축통화로 자리 잡기 위해선 지나온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제라르 뱅데 에뒤 프랑스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