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아름다운 그 얼굴…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그립다 그 얼굴.’
라쿠카라차(La Cucaracha)는 바퀴벌레를 뜻하는 스페인어. 바퀴벌레가 아름답고 그립기까지 하다고?
기원이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스페인 민요다. 하지만 이 노래가 유명해진 때는 20세기 초 멕시코 혁명기. 전설적인 혁명가 판초 비야(Pancho Villa·1878∼1923)의 농민군 찬양가였던 것이다.
바퀴벌레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다. 워낙 고장이 잦았던 비야의 자동차에 붙은 별명이라는 설과 혁명군을 돕기 위해 여인네들이 음식 바구니를 끼고 걸어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란 설이 있다.
비야의 본명은 도로테오 아랑고. 누이동생이 대농장 영주에게 강간을 당하자 영주를 죽인 뒤 북부 산악지대를 떠돌며 산적질로 연명했다. 그러던 중 자신을 따르는 게릴라를 이끌고 혁명에 가담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는 혁명 자금도 열차 강도로 마련했다. 1913년 미국의 한 운송회사 급행열차를 습격해 은괴 122개를 강탈한 뒤 운송회사 측에 싼값에 되팔아 무기와 말, 부하들을 끌어 모았다.
비야는 곧 ‘민중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가 제작됐고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그의 별난 버릇마저 흠모의 대상이었다. 아이스크림이라면 사족을 못 썼고 밤새 춤을 춰도 지치지 않는 정력가였다. 결혼한 여성만도 24명이나 됐다고 한다.
한때 그는 미국의 총아(寵兒)였다. 미국 언론은 그가 차기 멕시코 대통령이 될 것이라 보도했고 비야의 농민군 통솔력은 미군의 모델이었다. 존 퍼싱 장군은 그를 텍사스 주의 미군 기지로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몰락은 그의 무모함에서 시작됐다. 1916년 3월 9일, 비야는 병력 1500명을 이끌고 미국 뉴멕시코 주의 콜럼버스를 공격해 군인과 주민 10여 명을 죽였다. 미국이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베누스티아노 카란사를 지지한 데 대한 보복 조치였다.
미국은 즉각 퍼싱 장군의 지휘 아래 병력 6000명을 파견해 비야를 추격했다. 이른바 ‘판초 비야 토벌작전’이었다. 하지만 비야는 죽은 말의 몸속에 숨어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으로 살아남았다.
이후 비야는 은퇴해 대농장주가 됐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정치적 암살의 희생자가 됐고 몇 년 뒤엔 무덤마저 파헤쳐져 목이 잘리는 수모를 당했다. 사라진 두개골의 소재를 두고 각종 설이 난무했지만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