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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링해협 횡단/3월8일]악조건으로 한치앞을 내딛기 힘들다

입력 | 2007-03-09 10:38:00

운행을 마치고 강한 바람이 부는 상태에서 텐트를 치고 있다.


▽좌표 출발(08시40분) 북위66도03.256분 서경 168도53,560분

도착(16시40분) 북위 65도55.555분 서경 168도31.162분 *8시간 운행

계속 강한 북서풍이 몰아닥치고 있다. 밤새 시속 3.2Km로 남서쪽으로 떠내려왔다. 북서풍이 불면 남동쪽으로 얼음판이 밀려나야하는게 정상인데 무슨 일인지 얼음판은 남서쪽으로 움직인다. 아마도 북쪽으로 흐르는 조류와 상호 간섭이 생겨 생기는 현상인 것 같다.

베이스캠프에서 태풍 주위보가 발효됐다고 연락이 왔다. 초속 20m의 강풍으로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고 눈보라를 동반해 시야 확보에도 어렵다. 그렇지만 이렇게 앉아서 떠내려가기 보다는 우리 힘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강풍 속에서도 운행을 강행했다. 몇 걸음 띄다가 자빠지길 수없이 했다. 화이트아웃으로 내 다리를 내가 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출렁이는 고무판 얼음 위를 조심스럽게 걸어가는데 한 20m 앞에 커다란 구멍이 있었나보다. 그 위로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큰 고래머리가 쑥 올라왔다. 정말 엄청 큰 녀석이었는데 숨 쉬기 위해서 얼음이 없는 이 구멍으로 나왔나보다. 대원들 모두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얼음판 밑에서 우리를 보고 올라와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범고래는 돌고래를 공격해 잡아먹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우리 앞에 나타난 놈은 덩치가 정말 커서 범고래는 아닌 듯 싶은데 그래도 정말 간 떨어지게 놀랐다.

남풍을 기대해보지만 앞으로 닷새동안 남풍이 분다는 기상예보는 전혀 없어서 걱정이다.

운행을 마치고 텐트를 치는데 바람이 너무 강해 정말 애를 먹었다.

밤 11시25분 GPS로 좌표를 찍어보니 시속 4.5Km로 낮보다도 남쪽으로 내려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북위 65도 46.338분 서경 168도31.044분으로 목표지점인 미국 알래스카주 웨일스에 직선거리로 25Km 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빨리 걸어가고 싶지만 얼음판 움직이는 속도가 인간의 발걸음보다 빨라 그냥 바라만 보고만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지금 상황이라면 9일 오전에는 웨일스를 지나 남쪽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에서 딱 하루만 일찍 출발했더라면 오늘 웨일즈 입성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많다. 많이 힘들지만 내일 일어나서 운행을 계속하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픽업을 요청할 것이지만 죽을 힘을 다하겠다.

라브렌티야(러시아)=전창기자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