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변경선을 지나 시간을 알래스카(그리니치 표준시-9시간)을 사용해야하나 원정대가 운행에 혼란이 올 우려가 있어 러시아 추코트 자치구(그리니치 표준시+12시간=한국시간+3시간)을 사용합니다.》
밤새도록 강풍과 눈보라가 심해 텐트가 다 찌그러질 정도였다. GPS를 보니 강력한 북서풍에 유빙이 시속 5.8㎞의 무서운 속도로 남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다간 정말 얼음 한조각 없는 태평양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걱정에 잠 한 숨 돌릴 수 없었다.
새벽 5시 40분(한국시간 오전 2시40분) 좌표를 확인하니 12시간 동안 무려 50㎞ 가까이 밀려내려왔다. 판단이 필요했다. 육지에서 150㎞ 이상 떨어지게 되면 헬리콥터로 구조받기도 힘들어진다.
알래스카 놈의 제2 베이스캠프에 구조요청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1시간 마다 위치확인을 위해 위성전화로 통화 하기로 했다. 금새 최미선 매니저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를 구조하기로 계약을 맺은 에버그린 항공사에서 이런 강풍(초속 20m)에는 상업용 헬기가 뜰 수 없다고 한단다. 그래서 미군에 구조 요청을 하겠단다. 만일 구조 헬기가 오지 않으면 정말 낭패다.
원정대가 있는 곳은 안개로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화이트아웃 상태다. 만일 미군 헬기가 우리를 구조하러 왔다가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가면 일이 더 꼬이기 때문에 놈 베이스캠프에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오지 말고 시야가 확보되면 전화하겠다고 전했다.
1시간 뒤 받은 연락은 "미군의 블랙 호크 헬기엔 사람을 인지할 수 있는 적외선 장치가 있으니 시야 확보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또 썰매를 비롯해 짐들을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챙겨두라는 당부도 해왔다.
오전 10시쯤 되니 두두두 하고 헬기 소리가 들렸다. 10시5분 헬기에 서둘러 올라탄 우리는 불과 45분 만에 미국 알래스카주 놈에 도착했다.
놈으로 오는 길에 베링해협을 보니 우리 바로 아래쪽엔 아예 얼음이 없고 망망대해다. 박영석 대장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지체하다가는 정말 태평양의 미아가 될 뻔 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하루만 빨리 러시아에서 출발했어도 거대한 북풍이 불어닥치기 전에 동쪽으로 최대한 움직여 원정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떠나지 않는다.
아직 러시아에 머물고 있는 취재진이 13일 이곳 알래스카에 합류하면 곧바로 한국으로 들어간다.
대자연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 실패를 거울 삼아 또다시 도전할 것이다. 실패는 절대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성공을 위해 필요한 소중한 경험이다.
라브렌티야(러시아)=전창기자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