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소속 노무현 전 의원은 이인제 전 경기지사의 대선 출마 선언에 자극받아 자신도 나서볼 생각으로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구했다. ‘세대교체’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게 그가 내세운 이유였지만 경륜이나 인지도 면에서 아직은 무모해 보였다. 결정적으로 그를 주저앉힌 사람은 부산의 문재인 변호사였다고 한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초 같은 변호사로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일곱 살이나 위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막역한 사이였다.
▷문 변호사는 2002년 대선 때 부산에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노 후보를 돕다 이듬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함께 청와대에 들어갔다.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다시 민정수석을 맡다 지난해 5월 대통령 곁을 떠났다. 서울의 집까지 정리하고 부산으로 가 변호사 개업을 하려 했으나 대통령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해 10월 정무특보로 다시 불러들이더니 마침내 비서실장에 앉히기에 이르렀다. 그가 왜 ‘노무현의 남자’로 불리는지 알 만하다.
▷노 대통령과 문 비서실장은 상하관계를 넘어 파트너 관계에 가깝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문 씨는 오래 전부터 임기 마지막 해에 비서실장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자칫 기강이 해이해질 수 있는 비서실을 장악해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면 친밀도나 충성도에서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원래 대법관이 꿈이었고 수줍음을 타는 그는 처신이 바른 편이고 정치적 야심도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서실장의 기본 임무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비서실 직원들을 감독하는 것이다. 참모들이 직접 나서서 국민을 상대로 한 강연이나 글쓰기를 남발하고 언론이나 야당과 대립각을 세우면 그 후유증은 결국 대통령의 짐으로 돌아간다. 대통령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민심을 바로 전달하고, 인사를 제대로 하도록 조언하는 것도 비서실장의 몫이다. 지난해 ‘부산정권’ 발언처럼 논란을 부를 언행은 삼갈 일이다. 대선이 코앞이고 대통령은 하산(下山)길에 있다. 당연히 비서실장도 에러를 내지 말아야 한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