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겨울이 아쉬운 듯 개펄 위에 자라는 감태를 따는 촌부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한겨울 청정개펄에서만 자라는 감태는 남도의 반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밑반찬으로 3월 초까지 채취한다. 전남 무안군 현경면 월두마을 개펄.
《무안 황토밭에 봄이 앉았다.
붉은 흙 텃밭에 아지랑이가 아롱대는 걸 빗댄 말이다.
봄은 마술사. 뭐든 헤집어 푼다.
개펄에서 굴 따는 할머니의 머릿수건 매듭도 삐딱하게 풀렸고 양지녘에서 게으름 피우는 고양이의 눈초리도 경계심을 풀었다.
오로지 꿋꿋한 것은 황토밭 뒤덮은 초록의 마늘종과 둔덕 밭 보릿대뿐.
땡땡한 땅심 받아 지면에 돌출한 초록빛 봄 줄기만이 나른한 봄날 오후에 긴장을 돋운다.》
전남 함평만의 무안과 함평. 이곳 지형은 ‘한 바다 두 고장’이다. 육지를 파고든 함평만 바다가 한 땅을 둘로 나눔이니 적어도 초행길 여행자가 이 바다에서 무안과 함평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그저 붉은 황토밭 보이면 예외 없이 무안이요, 길가에 나비문양 보이면 어김없이 함평이니 그런 줄 알고 다니시기를.
차를 몰아 들어선 함평. 가로등이며 건물이며 도처에 나비 그림이다. 매년 3월 열리는 함평나비축제의 상징. 연중 내내 나비와 더불어 사는 곳은 함평뿐이다. 함평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가 있다. 영산강에 흘러드는 지류 고막천에 놓인 자그만 돌다리 고막교(길이 19.5m, 폭 3.5m, 높이 2.5m)다. 돈벌이가 궁하던 그 옛날, 동전 몇 닢이라도 벌 참으로 영산포로 떡 팔러 나가던 아낙들이 건너던 다리라는데…. 그래서 이름 하여 ‘똑다리(떡다리)’다.
다리가 세워진 것은 고려 원종 15년(1274년). 733년 전이다. 그런데도 아직 멀쩡하다. 고려 때 돌로 지은 것이라면 불탑 정도일 터. 절 안에 고이 간직해 온 것조차도 흔치 않은 마당에 흐르는 물 위에 놓여 줄곧 사람들이 오가던 돌다리가 아무 흠 없이 700년 넘게 버텨 왔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실제 가보니 더 기막히다. 마치 나무를 잘라 조립한 듯 정교히 짜맞춘 솜씨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긴 돌을 이어 붙여 올린 상판. 돌과 돌이 맞닿은 틈새가 전혀 벌어지지 않은 상태다. 주민들은 지금도 여기에 곡식 낱알을 흩뿌려 말리는데 틈새로 빠지는 낙곡의 손실이 전혀 없다고 한다.
함평과 목포 사이에 놓인 무안. 해안선의 들고 남이 어찌나 복잡한지 해안선 길이만 220km다. 이 기름진 땅 안에 들어서면 빛깔부터가 다르다. 붉은 황토밭 때문이다. 황토밭은 대부분 바다를 끼고 있다. 현경 망운 해제 운남 등등. 무안 땅 70%가 황토라니 ‘황토골’이라 불렸던 이유를 알 만하다. 황토는 무안의 보배인지라 무안 사람은 외지인만 보면 황토 자랑부터 시작한다. 어디 그 이유를 한번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황토의 주성분은 칼륨 철 마그네슘. 그런데 무안황토에는 다른 곳에 그리 많지 않은 게르마늄 성분이 많단다. 게르마늄 토양에서 자란 모든 것이 사람에게 약이 된다고 말하는 무안 사람들. 무안황토밭의 양파 마늘 무 고구마가 모두 특별하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특히 양파를 먹인 한우는 황토골 무안의 또 다른 ‘슈퍼 먹을거리’다.
봄이 오는 무안. 그 풍경은 도처에 즐비하다. 겨우내 황토밭 덮어씌운 비닐을 뚫고 힘차게 뻗어 오른 초록빛 양파 대와 청 보리,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황토밭 둔덕 등등. 그 너머로 펼쳐진 개펄 위로는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는 촌로의 손놀림이 부산하다. 겨우내 개펄을 초록빛으로 뒤덮은 감태(가시파래)를 따는 월두마을(현경면)의 풍경이다. 파래와 비슷한 해초인 감태는 아지랑이가 피는 봄볕 아래 수온이 오르면 대를 잇기 위해 포자를 퍼뜨리는데 포자가 방출되면 먹을 수 없게 된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개펄의 개흙 위를 할머니는 네 발로 긴다. 그리고 허리에 줄을 매어 끄는 바구니에 손으로 거둔 감태를 담기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힘들여 따봐야 하루벌이 1만5000원 안팎. 그래도 손자 녀석 군것질거리라도 마련해줄 요량으로 겨우내 감태를 땄다. 그 할머니를 따라 허벅지까지 덮는 비닐장화를 신고 개펄에 들어섰다. 겨우 20m를 나아가는데 10분 이상이 걸릴 만큼 개흙 위를 걷는 것은 중노동이었다. 감태는 남도의 반상에 일년 열두달 빠지지 않는 약방의 감초 격 밑반찬. 겨울 것을 냉동시켜 쓰는데 앞으로 감태 한 젓가락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를 나는 오늘 이 개펄 밭에서 분명히 깨달았다.
글·사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무안에 오시면 꼭 맛보세요▼
○여행정보
◇찾아가기 ▽손수운전 △함평: 서해안고속도로∼함평 나들목 △무안: 서해안고속도로∼함평∼일로 나들목, 혹은 서해안고속도로∼목포 요금소∼국도1호선 ▽철도=KTX 목포역에서 하차.
◇향토별미
▽함평 △함평천지 한우: 관내 한우작목반(5개)과 함평영농조합법인이 한약재를 넣어 개발한 특수사료를 먹여 키운 한우고기. 전국적으로 정평이 났다. 현지에서 ‘육회비빔밥’ ‘생고기’로 맛보는데 육회비빔밥은 전주 것과 구별된다. 부드러운 육회가 고소한 참기름과 어울린 맛이 기막힌데 선짓국은 덤. 생고기도 그 신선함과 안전함을 보장한다. 추천 맛집은 금송식육식당(주인 김정애). 생고기 1만7000원(1인분), 육회 1만7000원(한 접시), 육회비빔밥 5000원. 함평읍 기각리 261-3(신 보건소 옆) 061-324-5775
▽무안=황토골 무안에는 ‘무안오미(五味)’가 있다. 오미란 무안갯벌 세발낙지, 명산장어구이, 양파한우고기, 돼지짚불구이, 그리고 도리포 숭어회다. 1박2일 여행길에도 부지런 떨면 다섯 가지를 두루 챙겨먹을 수 있다.
△무안세발낙지: 무안읍내 공용버스터미널 뒤 ‘낙지골목’이 명소. 낙지를 바구니에 문대어 초간장에 찍어먹는 ‘기절낙지’에 도전해 보자.
△명산장어구이: 영산강 하구언이 생기기 전까지 풍천장어로 이름난 몽탄면 명산리에서 3대에 걸쳐 70년째 장어를 굽는다. 양식장어라도 굽는 것만큼은 주인 김규선(53) 씨가 직접 한다. 700g(2인분) 3만 원, 명산리 724-1, 061-452-3379
△양파한우고기: 황토밭에서 재배한 양파를 먹여 키운 한우는 누린내가 없고 육질도 부드러워 비싸게 팔린다. ‘승달가든’(무안읍)은 양파한우 암소만 쓰는데 생고기(갈비 안쪽 치마살·200g 1인분에 1만9000원)와 샤부샤부(200g 1인분에 2만 원)를 맛보자. 명절(설 추석 연휴)을 제외하고 연중무휴. 무안읍 성내리 141-5(무안농협·무안초등학교 앞), 061-454-3400
△돼지짚불구이: 석쇠에 삼겹살을 깔고 볏짚의 벌건 불씨에 순간적으로 구워내는 특별한 삼겹살구이. 암퇘지만 쓴다. 볏짚 특유의 향이 고기에 스며듦과 동시에 볏짚 불씨의 열과 적외선에 의해 기름이 쏙 빠진다. 담백한 맛이 특미. 양파김치와 함께 작은 게를 갈아 만든 게장을 양념해 쌈을 싸는 사창식 삼겹살쌈을 체험해 보자. 몽탄면 사창리가 원조. 두암식당(사창리 697-2)의 경우 1인분(석쇠 한 판)에 7000원, 061-452-3775
△도리포 숭어회: 바다낚시로 이름난 이곳은 고기 많기로 소문난 칠산 앞바다에서 잡힌 자연산 고기의 집하장이기도 하다. 사철 나는 숭어지만 개펄의 개흙 냄새가 전혀 없는 겨울(11월∼3월 초)이 맛도 좋고 육질도 쫀쫀하다. 홀통옛날횟집(현경면 오류리 1368-4)에서는 2, 3인용 1kg(회+매운탕)이 3만5000원. 061-452-2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