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초기 조치를 이행하고, 이와 연계해 나머지 나라는 북이 원하는 실질적 경제지원을 한다.’ 이런 요지의 6자회담 2·13 합의가 있은 지 한달이 됐다. 그 사이 북-미는 관계정상화를 위한 1차 실무회의를 뉴욕에서 가졌고, 남북은 7개월 만에 장관급회담을 평양에서 재개했다. 또 이해찬 씨가 평양을 다녀와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띄웠다.
이런 전개 속에서 국내 일부 세력은 평화풍(平和風) 부채질에 애쓰고, 다른 일각에선 북-미와 우리 정부의 ‘북핵 전면폐기 관철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 두 기류 다 문제점을 안고 있다.
2·13 합의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초보적 진전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북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플루토늄은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백지상태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가 지난주 “북한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의 완전 폐기라는 큰 과제는 아직까지 미래의 일”이라고 말한 그대로다. 같은 시점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미의회 청문회에서 ‘북이 2009년까지 고농축우라늄(HEU)을 이용한 핵무기를 보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핵을 둘러싼 ‘진실의 순간’이 언제 어떤 방향으로 올지, 이처럼 안개 속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2·13 합의가 ‘정부의 평화적 북핵 문제 해결 노력의 결실’이라고 자찬하면서, 일방적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시시비비(是是非非)해 왔던 언론을 비난하기에 바쁘다.
북핵 이고 건배할 생각부터 하니
더욱 딱한 것은 북핵 위기의 인과(因果)에 대한 무지 또는 의도적 왜곡이다. 지난주 대통령홍보수석실은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요구, 2002년 미국의 중유 지원 중단 등 ‘대북 강경책’에서 북핵 위기가 비롯되고 악순환됐다”고 주장했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남한은 주한미군의 전술핵을 전면 철수했지만 북은 오히려 핵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래서 터진 것이 1993, 94년의 1차 핵위기였다. 2002년의 2차 핵위기는 북의 우라늄 핵개발 의혹 때문에 빚어졌다. 2·13 합의는 미국이 간헐적인 무력(武力) 시위와 함께 북의 자금줄을 동결하고,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까지 유엔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며 북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대중(DJ)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북에 핵무기 보유국의 길을 터 준 것이나 다름없다. DJ는 노벨 평화상에 매달려 북핵문제에는 관심이 없다시피 했고, 노 대통령도 대북 퍼 주기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북은 핵실험에 이르렀고, 이제는 핵보유국 행세를 하면서 미국과 일대일 협상을 할 정도가 됐다.
일부 좌파세력은 ‘북이 핵을 갖건 말건’ 북이 달라는 걸 주면서 공존하면 된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는다. 반대파를 공격할 때는 자신들은 ‘통일세력, 평화세력’이고 반대파는 ‘반(反)통일세력, 전쟁세력’이라고 딱지를 붙인다. 하지만 ‘핵을 가진 북과의 평화도 괜찮다’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의 훼방꾼이다. 4800만 국민이 북핵의 인질이 된 상태에서 ‘연출되는 평화’는 굴욕적 평화일 뿐이고 국민의 끊임없는 부담을 전제로 한 ‘비대칭 평화’이기 때문이다.
좌파세력이 이처럼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우리도 북핵에 독자적으로 대응할 프로그램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말았다. 물론 ‘북핵 맞대응론’ 또한 사려 깊지 못하다. 한미동맹을 깨겠다는 각오가 없는 한 무책임한 주장이며, 자칫하면 동북아 핵도미노의 책임을 우리가 다 뒤집어쓸 우려가 있다.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절대적인 우리나라가 북한처럼 모험적인 행동에 나선다면 경제적 파국부터 맞을 수 있다.
미국 불신 ‘북핵 맞대응론’도 위험
미국이 이미 개발된 북핵을 용인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핵 용인은 세계적 차원의 비핵화 노력에 차질을 초래할 뿐 아니라 일본의 핵무장 추진, 한국 내 다수의 반발을 부를 것이다. 익지 않은 평화에 도취되거나 정략적 ‘평화 장사’로 재미보려는 행태도 배척해야겠지만, 현 상황에서 미국과 우리 정부를 지나치게 의심하고 미국에 배신당한 듯이 행동하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지금은 ‘핵 없는 북과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냉정하고 전략적으로, 참을성 있게 접근하는 국가적 노력이 중요하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