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의 직계 후손인 이종남 전 감사원장(왼쪽)과 서애 선생의 종손인 유영하 옹이 9일 서애 선생을 기리는 경북 안동 병산서원의 입교당에 앉아 두 충신의 인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동=이권효 기자
“아아! 임진년의 전화(戰禍)는 참혹하였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오늘날이 있게 된 것은 하늘이 도운 까닭이다… ‘시경’에 ‘지난날의 잘못을 징계하여 환난이 없도록 조심한다’고 했으니 이것이 내가 징비록을 저술하는 까닭이다.”(유성룡의 ‘징비록’ 서문 중)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1542∼1607)은 1592년 전쟁이 일어나자 군사를 총지휘하며 충무공 이순신을 등용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상황을 기록한 ‘징비록’(懲毖錄 국보 제132호)을 고향인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 내려와 저술했다.
올해는 서애 타계 400주년이 되는 해. 서애의 후손인 풍산 유씨와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덕수 이씨 문중이 두 충신의 400년 인연을 되새기는 역사적인 추모제를 마련한다.
5월 초순 시작되는 추모제를 앞두고 서애의 14대 종손인 유영하(81) 옹과 충무공의 13대 직계후손인 이종남(71) 전 감사원장이 9일 경북 안동에서 처음 만났다. 이들은 서애의 위패를 모신 병산서원을 함께 둘러본 뒤 서애의 종택인 풍천면 하회마을 안 충효당(보물 제414호)에서 400년에 걸친 양가의 세교(世交)를 되새겼다.
“서애 선생의 천거가 없었다면 충무공이 어떻게 나라를 구했겠습니까.” “충무공께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면 서애 선생도 오늘날까지 존경받지 못했겠지요.”
두 후손의 이날 만남은 서애의 서세(逝世·‘별세’의 높임말) 400년을 맞아 추모행사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추진위원장을 누가 맡을 것인가를 두고 두 문중이 서로 양보를 하다가 결국 이 전 감사원장의 몫이 됐다. 서애를 추모하는 행사지만 충무공의 후손이 맡는 것이 더욱 의미 있다는 데 뜻을 모은 것. 이 위원장은 “병산서원의 서애 선생 위패 앞에서 충무공이 위기에 놓인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며 “징비록에 나타난 서애 선생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오래도록 국민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문중과 안동시는 5월 10∼20일 충효당과 국립중앙박물관, 부산 및 진주박물관,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유물전시를 비롯해 서애 선생 전기발간, 연극 ‘다시 쓰는 징비록’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마련한다. 충효당에 보관돼 온 ‘징비록’은 최근 전시하기 위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번 추모제는 화해의 장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조선 침공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후손, 조선을 지원했던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의 후손이 추모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여송 장군의 후손은 중국 랴오닝(遼寧) 성 톄링(鐵嶺) 시에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직계후손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막식 날에는 ‘400년 만의 화해’를 주제로 일본 야마가타(山形) 현 사가에(寒河江) 시 공연단이 일본의 전통무용을, 중국 취푸(曲阜) 시 공연단이 명나라 전통무용을 선보일 예정이다.
유영하 옹은 “일본의 후손은 임진왜란에 대한 사과를 전제로 초청할 예정”이라며 “일본의 국내사정 때문에 아무 죄 없는 조선을 침략한 것을 마땅히 사과하고 세 나라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화해하는 큰마음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안동=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