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방송가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월드컵이었다. KBS, MBC, SBS 지상파 TV 3사는 2006 독일 월드컵의 주요 경기를 동시에 중계했고, 한국 경기가 있는 날에는 종일 월드컵 방송이라도 있는 듯 보였다.
월드컵에서 차범근-두리 부자의 중계로 MBC가 완승을 거둔 얼마 뒤 SBS는 2010∼2016년 동·하계 올림픽과 2010, 2014년 월드컵 중계권을 ‘싹쓸이’해 방송계를 놀라게 했다.
KBS와 MBC는 거세게 반발했다. 방송사 간의 출혈 경쟁을 막고, 국민에게 보편적 접근권을 주기 위해 방송 3사가 ‘코리아 풀’을 만들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국제축구연맹(FIFA) 등과 협상해 왔는데, SBS가 별도로 계약을 하는 비신사적인 행동을 했다고 비판하고 나선 것.
SBS의 ‘약속’ 위반 진위를 떠나 방송 3사가 사전에 올림픽 중계권을 낮은 가격에 따오기로 서로 합의했다면 이는 경제학적으로 담합으로 볼 수 있다.
담합은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이윤을 높이기 위해 지나친 경쟁을 자제하고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해 골고루 돈을 벌자는 것이다.
월드컵 중계권 사례는 구매자로서의 담합이지만 많은 경우 담합은 판매자 간에 나타난다. 담합의 역사는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양털 상인들이 서로 짜고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려 받은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인류 최초의 담합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1963년 밀가루, 설탕, 시멘트를 제조 판매하는 업체들이 담합해 정부 고시가격의 5배가 넘는 폭리를 취한 일이 있었다.
일부 기업은 이렇게 얻은 부당이득을 정치자금으로 뿌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훗날 담합행위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제정의 계기가 됐다.
자본주의의 메카인 미국에서는 담합을 매우 중대한 범죄로 보고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직접 단속을 한다. 세계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인 소더비의 최고경영자(CEO)가 담합으로 철창신세를 졌고, 하이닉스반도체와 삼성전자 임직원이 담합 혐의로 미 정부에 막대한 과징금을 내고 실형까지 선고받는 사례도 있었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교복업체와 유치원에 대해 담합 혐의를 잡고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담합은 무척 달콤한 유혹이다. 하지만 월드컵 중계권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담합 참여자들은 언제나 현재의 담합을 깨고 자신의 이윤을 더 높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