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의 해를 맞아 유력 대선주자 캠프에 줄을 대려는 ‘폴리페서’가 크게 늘고 있다. 전문적인 식견을 현실 정치에 반영해 보려는 순수한 의도를 가진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권력의 양지에 들어가기 위해 정치권을 넘보기도 한다. 연구와 강의를 소홀히 한 채 대선 대박을 노리는 일부 폴리페서의 폐해는 결국 대학과 학생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사진=김미옥 기자 · 그래픽=강동영 기자
부산 지역 대학의 40대 중반 교수 A 씨.
그는 요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에 자주 나타난다. A 교수는 정치권과 언론계 인사들을 만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어느 쪽에 베팅을 하면 좋겠느냐”고 묻곤 했다. 그는 “이미 양쪽 캠프에 모두 오퍼(offer·신청)를 했다”며 “교수 1명과 일반인 1명은 다르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교수가 많다”고 자랑했다.
지난달 이 전 시장의 캠프인 안국포럼 사무실에 수도권의 한 대학교수 B 씨가 직접 만들었다는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를 들고 찾아왔다. 자료는 마이크로소프트(MS) 파워포인트로 보기 좋게 작성됐지만, 내용은 신문 기사나 캠프가 제공한 보도자료 수준에도 못 미쳤다는 게 안국포럼 관계자의 얘기다.
박 전 대표 캠프는 한 달여 전 자문교수단에 참여한 서울 한 대학의 C 교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직 장관들에게 부탁해 자문교수단에 이름을 올린 이 교수는 최근 다른 교수의 1차보고서를 가공해 자신이 작성한 것처럼 최종 보고서를 만들어 캠프 측에 건넸다는 것.
대선을 앞두고 각 주자 진영에 공식 비공식으로 접근해 오는 ‘폴리페서(polifessor·정치교수)’가 줄을 잇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하루 한두 명의 교수가 캠프를 찾아온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측은 “올해 들어 후보를 만나게 해 달라며 찾아온 교수가 50∼60명에 이른다”고 했다.
좀 더 조직적으로 동료 교수들을 규합해 특정 주자를 지지하는 ‘포럼’을 결성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서울의 한 교수는 지난해 학기 중인데도 대선주자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쪽보다 수는 적지만 범여권 대선주자들에게 선을 대는 교수들도 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에게는 “남북 군인 축구대회 개최를 추진하라” “영남 표심 공략 방안의 하나로 대구공항의 명칭을 ‘박정희 공항’으로 바꾸자는 공약을 내놓자” 등의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오는 지방대 교수들이 있었다고 한다.
대선 때마다 ‘직업적으로’ 대선주자 캠프에 접근하는 폴리페서들도 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진영의 핵심으로 활동했던 서울 모 대학 교수는 올해는 박 전 대표 진영에 몸을 담았다. 2002년 대선 때 이 후보의 광주 전남지역 자문교수단으로 활동했던 한 지방대 교수는 지난해 말까지 고건 전 국무총리의 자문교수를 자임했다. 한때 고 전 총리에게 정기적으로 한반도 주변정세 리포트를 제공했던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현재 이 전 시장 캠프의 자문교수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1999년 관계(官界)를 떠나 교수로 변신한 한 인사는 교수직을 유지한 채 2002년 지방선거와 2004년 총선에 잇따라 출마했으며 4·25 재·보선 출마도 저울질하고 있다. 성격은 다르지만 중앙대 교수 출신의 민주당 김효석 의원은 8년째 휴직 중이다.
서강대의 한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는 교수들의 정치화가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교수 사회의 중심에 있어 본 적이 없는 ‘외곽 교수’들이 정권의 중심에 선 데 따른 반작용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폴리페서(polifessor)::
정치를 뜻하는 영어 ‘politics’와 교수를 뜻하는 ‘professor’의 합성어.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정책으로 연결하거나 그런 활동을 통해 정관계 고위직을 얻으려는 교수를 일컫는 한국적인 용어. 정권의 필요에 의해 발탁된 관료인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와 구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