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시장을 찾은 20대 여성들과 궁중요리연구가 한영용(오른쪽에서 두 번째) 씨가 즉석에서 합석해 막걸리를 나누고 있다. 1만 원짜리 지폐 한두 장이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저렴함은 재래시장의 변치 않는 매력이다. 원대연 기자
광장시장 ‘순희네 빈대떡’의 추정님 씨. 통계청 CF에 출연한 뒤 본명 대신 순희로 불린다. 원대연 기자
마장동 ‘뚱뚱이 족발집’ 유정순 씨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족발을 꺼내고 있다. 원대연 기자
몇 가지 쇼핑 요령만 알면 동대문 야시장에서 도매가격으로 최신 유행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스타일리스트 최희진 씨가 동대문 패션타운 ‘뉴존’의 패션벨트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원대연 기자
청계천이 어둑해지는 저녁 무렵. 청계천 바로 옆 광장시장(서울 종로구 예지동)은 불야성(不夜城)의 초입에 들어선다.
시장 안 먹자골목에선 이른바 ‘광장 뷔페’의 열기가 뜨겁다. 좁은 골목을 비집고 들어선 노점은 맛 기행에 나선 식객들로 북적거린다.
빈대떡 전 김밥 순대 떡볶이 보리밥 족발 생선회…. 한 술꾼의 표현처럼 ‘육해공(陸海空)’ 먹을거리가 없는 게 없다. 각양각색의 음식 냄새와 왁자지껄한 소리에 코와 귀가 멍해진다. 하지만 더욱 강렬한 것은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사람 냄새’다.
시장(市場)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은 시장을 살린다.
한때 우리 생활의 중심에 자리했던 재래시장은 대형 할인점의 공세와 참살이 시대에 어울리지 못한 불편함 탓에 뒷전으로 밀려났다. 2005년 복원된 청계천은 인근 재래시장의 노후한 혈관에 새로운 피를 공급하는 실핏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7년간 서울 사대문 안을 답사해 온 건축가 조정구(41) 씨는 “청계천이 열리면서 주변 재래시장으로 사람이 몰리고 있다”며 “서민들의 삶이 녹아 있는 재래시장이 제 기능을 해야 도시가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광장뷔페 노점의 권리금은 청계천 특수(特需)의 생생한 증거물이다.
불과 200m가 되지 않는 구간에 250여 개의 노점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소유권이 아니라 바닥 권리만 인정되는데 청계천 복원 뒤 권리금은 50∼100% 올랐다. 목이 좋은 교차 지역은 한 자리(폭 80cm, 길이 140cm)에 권리금이 7000만 원 이상이다. 대개 한 업소가 세 자리를 차지하니 2억 원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돈을 보따리로 싸들고 다녀도 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
광장, 방산, 동대문, 마장동 축산물시장 등 청계천과 인접한 재래시장으로 맛과 멋, 사람을 찾아 떠났다. 궁중요리연구가 한영용(39·큰기와집 대표) 씨와 스타일리스트 최희진(31·스타일스토리 실장) 씨가 시장 기행에 동참했다.
글=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 정
○전통, 정(情), 그리고 사람
광장시장은 1905년 한성부(지금의 서울시) 허가에 의해 설립된 국내 최초의 상설시장이다. 국내 시장 역사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장 중의 시장’으로 불렸다. 주단과 포목이 주류를 이루지만 다른 물품도 없는 것이 없다.
청와대나 명문가에서 단골로 장을 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품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한영용 씨는 “광장시장은 포목 과일 어물 그릇 등 어떤 품목이든 서울 장안에서 최상급만 취급하는 고급시장으로 유명했다”며 “뜨내기 손님보다는 10년, 20년 이상 거래하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동원청과’는 35년째 한자리를 지키는 과일 가게다. 이준행(65) 상훈(35) 씨 부자가 함께 운영한다. 대우자동차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했던 상훈 씨는 “수입도 샐러리맨보다 나은 편이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최고의 과일을 식탁에 나른다는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가격은 백화점보다는 싸고 대형 할인점보다는 약간 비싸다. 하지만 신선도와 크기 등 품질은 월등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시장은 변화하는 우리네 삶의 궤적을 그대로 보여 준다.
‘한국기물상사’ 이종진(67) 씨는 1953년 그릇과 첫 인연을 맺었다. 1950년대에는 양은과 ‘스텐(스테인리스)’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1960년대엔 수입 도자기 그릇과 유리 제품, 1970∼80년대에는 크리스털과 울긋불긋한 본차이나를 찾는 손님이 많았다. 요즘은 고가품보다는 값싸고 편리한 플라스틱과 양은 제품이 많이 나간다.
시장의 시계는 바깥 세상보다 훨씬 느리게 돌아간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천막을 치고 장사를 하던 것이 1950년대 시장 풍경이다. 대부분 목조건물에 비가 오면 흙바닥이 푹푹 빠졌다. 지붕이 설치된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그는 “재래시장의 느린 속도가 시장의 원초적 매력이자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말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경남상회’는 36년간 영광 굴비와 건어물을 취급했다. 영광굴비와 가게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자 긴 대답이 돌아왔다.
“고향이 역삼동인데 아버지가 서울 아래쪽이라며 경남(京南)이라고 이름을 지었어. 젊은 사람들은 몰라. 옛날에는 강남구가 없었어. 처음에 성동구였다가 나중에 강남구가 된 거야. 세상이 그렇게 바뀐 거지. 그래도 이명박 씨가 청계천 주변 시장으로 사람들을 몰리게 했어. 먹자골목은 ‘로또’에 당첨된 거나 마찬가지지.”(윤억희 씨·60)
○ 젊은이들이 몰려온다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종로 광장상인총연합회’ 조병옥 사무국장은 “일단 청계천 복원으로 사람이 몰리는 만큼 시장이 살아날 수 있는 계기는 마련됐다”며 “불편한 주차환경의 개선, 고객을 위한 휴식 공간 만들기, 청계천과 연계된 관광상품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로또를 맞았다’는 먹자골목은 과연 활기가 넘쳤다.
상인들에게는 지난 설이 대목이었다. 청계천 쪽 남1문 입구에 있는 ‘목동 비빔밥’의 신해자(47) 씨는 역귀성으로 지방에서 올라온 청계천 나들이 방문객들이 몰려 쉴 틈이 없었다고 했다. 청계천이 복원된 뒤 주말이면 하루 200그릇 이상의 비빔밥이 팔린다. 평일은 30%, 주말은 곱절 가까이 판매량이 늘었다.
30cm 길이의 작은 노점 간판을 쭉 훑고 지나다 보면 이들의 사연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모녀가 장사를 하면 ‘모녀 횟집’, 딸 이름이 영선이면 ‘영선이네’, 고향이 전라도 순천이면 ‘순천네’ 하는 식이다. 전국 팔도 사람이 모였고, 수십 년간 옆에서 장사를 했기 때문에 웬만한 가정 대소사는 서로 꿰뚫고 있다.
한 노점에서 회식을 하고 있는 20대 직장 여성들을 만났다. 젊은 손님이 늘어난 것은 ‘늙은 시장’의 밝은 미래다.
최민정(삼광의료재단 신속검사팀) 씨는 “2만, 3만 원이면 6명이 배부르게 안주를 먹으면서 술도 한잔할 수 있다”며 “방금 전 옆 좌석의 아저씨가 성(姓)씨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줬다”고 말했다.
기지개라도 켜면 금세 옆 좌석의 손님과 몸이 부딪친다. 세대 차이도 있고 하는 일도 다르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즉석 인사를 나누고 술잔을 건넨다.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재래시장의 정(情)이다.
백발이 성성한 거리의 악사가 트럼펫으로 ‘목포의 눈물’을 구슬프게 연주한다. ‘삼학도∼’ 합창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 맛
○광장뷔페
요즘 먹자골목에서 가장 ‘뜬’ 것은 빈대떡이다. 종로에서 가까운 ‘순희네 빈대떡’은 평일에도 줄을 서서 20∼30분 기다려야 비좁은 테이블을 차지할 정도로 손님이 많다.
가게 앞에서 빈대떡을 부치는 추정님(48) 씨는 시장통의 유명 인사다. 지난해 가을 통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통계청 공익 CF에 ‘순희 씨’로 등장했다. 전남 장성에서 농사를 짓던 추 씨의 삶은 언니를 도와 가게를 하면서 확 달라졌다. 아니, 3남 3녀인 형제들의 인생 자체가 바뀌었다. 5명이 이 가게와 두 개의 노점을 꾸려 가며 빈대떡과 인연을 맺고 있다.
“시장은 참 기(氣)가 센 곳이에요. 정도 많고 미움도 많고 소문도 빨라요. 시장에 나온 어머니들은 저마다 책으로 쓸 만큼 깊은 사연을 갖고 있어요. 억척스럽게 돈을 모아 자식 뒷바라지하는 분이 많습니다.”
이곳의 빈대떡은 녹두와 빈대떡용으로 담근 김치가 맛의 비밀이다. 지나치게 맵거나 붉지 않은 빈대떡용 김치를 장성에서 매년 2만 포기씩 담근다. 둘이서 빈대떡 두 장(8000원)을 시키면 남길 정도로 양이 많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거나 장마철이 되면 다른 업종의 식당들이 파리만 날리는 것과 달리 빈대떡 집은 대박이다.
“통계는 아직도 잘 몰라요.(웃음) 하지만 점심부터 오후 4시까지 손님을 보면 하루 빈대떡 양은 계산이 나옵니다. 낮 손님이 많으면 250장, 비라도 오면 300장을 훌쩍 넘기죠.”
옆에 있는 ‘누나네’는 모둠전이 일품이다. 김치 동태 부추 고추 호박 버섯 간 등 10여 가지 다양한 색과 맛의 전으로 유명하다. 두 집이 가까워 양쪽 음식을 섞어 먹는 손님도 있다.
‘할머니집 순대’는 중앙시장에서 대량으로 들여오는 순대가 아니라 손수 제작한 순대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시어머니에 이어 며느리가 2대째 운영하고 있다. 보통 순대와 여성 팔뚝 굵기의 왕순대, 머리고기 수육이 인기다.
먹을수록 더 먹고 싶어진다고 해서 ‘마약 김밥’이라는 별명이 붙은 꼬마 김밥도 있다. 간판이나 전화번호도 없이 배오개다리 옆 하나은행 뒤편에서 새벽 의류시장이 서는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3시경까지 김밥을 판다. 손가락 굵기에 당근 단무지 시금치만 들어있지만 밤샘 영업을 하는 상인들이 즐겨 먹을 정도로 인기다.
‘경상도젓갈 전문집’은 드물게 가자미식해의 맛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명란 청란 멸치 등 50여 종의 젓갈을 취급한다. 제주도 어린 멸치로 담근 꽃 멸치젓으로 밥을 비비면 ‘겁나게’ 맛있다는 것이 한영용 씨의 설명이다.
‘낙원떡집’의 수수부꾸미는 시장통에서 별미로 소문나 있다. 기은애(60) 씨는 “손님들이 건강에 신경 쓰면서 판매량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모녀 모듬횟집’의 김옥자(72) 장병화(51) 씨.
장 씨는 “1977년부터 어머니가 장사를 시작했는데 일손을 돕다 나중에는 같이 가게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나고 참치 문어 멍게 등 각종 해물이 담긴 모둠회가 1만∼2만 원이다.
○마장동 축산물 시장
조선 초기 말을 기른 양마장이 있던 이곳은 도축장이 이전하면서 새롭게 바뀌었다. 4100여 개의 축산물 도소매 점포들이 깔끔하게 정비됐고 관할 성동구청은 이 지역을 세계적인 ‘불고기 거리’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하루 거래되는 축산물은 소 1000여 마리, 돼지 2만여 마리로 서울 하루 육류 소비량의 60∼70%를 차지한다. 대형 마트보다 가격이 싼 데다 신선하고 원산지 표시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시장 주차장 옆에는 생고기 전문점 20여 곳이 영업 중이다. 현재 현대아파트가 들어선 곳에 있던 포장마차들이 이주하면서 먹자골목이 형성됐다. ‘원조 전라도집’에 들어서면 프로축구 전남 드래곤즈 허정무 감독의 사인이 한눈에 보인다. 일반 음식점에 비해 가격이 30%가량 싸다. 치마살 제비추리 차돌박이 양지머리 등 모둠고기 600g이 4만 원이다. 등골과 간, 처녑이 서비스로 제공된다. ‘대구집’ ‘전봇대집’도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족발이 생각나면 주차장 입구 ‘뚱뚱이 족발집’과 ‘빨간 마후라집’이 좋다. 스물여섯 살 때부터 족발을 팔았다는 뚱뚱이 족발집 유정순(49) 씨는 “계피나 감초와 같은 한약재를 넣은 건강 족발을 꼭 먹으러 오라”고 당부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무지개초밥 명소 - 제과제빵 골목 아시나요
○동대문 야시장
동대문 야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군침이 절로 도는 먹을거리를 지나칠 수 없다. 예전에는 김밥 떡볶이 곱창 등이 행인들의 발걸음을 잡았던 주요 메뉴였다면 요즘은 종류가 훨씬 다양해졌다. 최근 시장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음식은 무지개초밥. 멸치 쇠고기 고추장 날치알 유부 등 모두 7가지 맛으로 1인분 11개를 5000원에 판다.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의 먹을거리도 다양하다.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을 위해 잔치국수 육개장 순댓국 물회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방산시장
광장시장에서 마전교를 지나 방산시장으로 접어들면 제과제빵 골목이 나온다. 재료와 도구를 파는 가게 10여 곳이 있다.
1954년 문을 연 ‘의신상회’ 지배경(61) 씨는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도 출연했다. 3대째 가업을 잇는 곳이다.
그는 “전에는 전국을 상대로 한 도매 위주였지만 지금은 소매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박희수(18·영파여고 3년) 양은 “초콜릿 재료를 구입하러 왔는데 가격이 다른 데보다 10∼20% 싸다”고 말했다.
■ 멋
《청계천을 따라 형성된 재래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멋’이다. 특히 동대문 주변에 형성된 패션의 거리는 재래시장과 현대식 패션상가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국내 패션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재래시장에서 ‘추억의 멋’을 느끼고 싶다면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을 찾으면 된다. 짧게는 수년부터 길게는 수십, 수백 년에 이르는 각종 생활용품과 고가구가 곳곳에 숨어 있다.》
○ 동대문 야시장
“인터넷 쇼핑몰의 운영자인데 샘플을 구하러 왔다고 해보세요. 운만 좋으면 소매가격의 절반에 물건을 살 수도 있어요.”(스타일리스트 최희진 씨)
동대문 패션거리는 두타 밀레오레 등 대형 쇼핑몰로 유명하지만 패션 관계자들이 즐겨 찾는 곳은 매일 밤 11시경부터 새벽까지 열리는 ‘야시장’. 국내는 물론 세계 패션계의 흐름도 엿볼 수 있다.
“촬영에 필요한 의상과 소품을 구입하기 위해 야시장을 자주 찾습니다. 매장과 시간대, 흥정방법에 따라 가격 차가 커요. 패션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몇 가지 요령만 익히면 소매가격보다 30∼40% 저렴한 값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최 씨는 일반 쇼핑객들에게 적합한 시장으로 ‘제일평화시장’을 꼽았다.
제일평화시장은 폭 넓은 연령층에 맞게 옷이 구비돼 있는 점이 장점이다. 파파라치에게 사진이 찍힌 해외 스타들의 옷은 곧바로 모방돼 이곳에 전시된다. 가수 구준엽 씨(1층)와 탤런트 이승연 씨(지하 1층)가 운영하는 옷 집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또 다른 패션타워인 누죤과 디자이너클럽에선 액세서리, 구두, 모자 위주로 소매가 가능하다. 일부 도매상은 몇 개 남지 않은 물건일 경우 일반 소비자에게 팔기도 한다. 발품을 팔면 그만큼 쇼핑이 유리해진다.
길거리 야시장의 추천 아이템은 트레이닝복, 모자, 청바지다. 같은 제품이라도 판매자에 따라 다른데 야시장 입구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가격이 쌀 확률이 높다.
건물에 입주한 도매상은 대개 토요일 밤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인파에 시달리지 않고 여유 있게 쇼핑을 즐기려면 일요일 밤이나 월요일 밤이 좋다.
○ 동대문 풍물시장
낱개로 산더미처럼 쌓인 트로트 메들리 테이프, 누런 재킷의 LP판, 꼬질꼬질한 때가 묻은 헌 옷, 미군 군용식량인 시레이션, 호가만 수천 만 원인 이탈리아제 고가구….
2003년 11월 말 서울 동대문운동장으로 들어온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는 황학동 벼룩시장의 명성을 잇고 있다.
12일 오후의 풍물시장은 상인과 손님들의 흥정으로 활기가 넘쳤다. 다만 동대문 일대를 도심공원화하려는 서울시와의 마찰로 곳곳에 투쟁 깃발이 걸려 있었다.
현재 풍물시장은 동대문운동장 트랙을 따라 900여 개의 좌판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좌판의 크기도 가로 2m, 세로 1.2m로 일정하다.
풍물시장의 동문 부근에는 만물상, 동서쪽에는 식당, 북문 쪽에는 의료기구상이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많은 품목이 이곳저곳에 섞여 있어 꼼꼼히 시장을 둘러봐야 벼룩시장의 진정한 멋을 찾을 수 있다. 축음기와 LP판,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양은 도시락과 ‘브라더’ 재봉틀 등 추억의 물건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도 요즘 이곳의 특징이다.
풍물시장의 한 상인은 “월요일엔 상인들이 물건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다닌다”며 “새로 구한 물건들이 잘 손질돼 상점에 나오는 목요일과 금요일이 쇼핑하기에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