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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20세기가 진보의 시대다?… ‘진보와 야만’

입력 | 2007-03-17 03:00:00


◇진보와 야만/클라이브 폰팅 지음·김현구 옮김/712쪽·3만 원·돌베개

“앞으로 21세기의 수십 년은 한 줌의 소수에게는 진보로, 압도적 다수에게는 야만으로 다가올 것이다.”

21세기의 희망에 부풀어 있는 사람들을 향해 저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그 메시지는 지나간 20세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자 20세기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 시각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다.

영국의 정치학자인 저자는 새로운 시각으로 20세기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유럽 중심적인 사관을 극복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으로 보는 시각에서도 벗어났다. 20세기를 바라보는 저자 시각의 기준은 ‘진보와 야만의 투쟁’. 이 같은 시각에서 생산, 환경, 지구화, 탈식민지, 권력, 독재, 전통. 혁명, 교통, 민주주의, 사회주의, 차별 등 다양한 테마로 20세기를 들여다보았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엘리트들은 과학의 발전, 자연의 정복, 생산의 증대와 물질의 풍요, 민주주의의 발전 등을 근거 삼아 20세기야말로 중단 없는 진보의 시대였다고 본다. 하지만 저자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유럽과 북아메리카 이외 지역의 눈으로 보면 진보가 아니라 야만이었다는 것이다. 파시즘과 나치즘, 무수한 전쟁, 국가의 폭력, 과학의 부작용, 빈부격차의 심화 등등.

이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이렇다. “20세기 전 기간에 걸쳐 전 세계를 살펴보면 가장 공통된 정부 형태는 민주가 아니라 독재였는데 이런 측면을 외면하고 20세기를 민주의 진보라고 말할 수는 없다.” “20세기에 노예제가 사라지긴 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다양한 강제노동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교통은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의 자동차 주행속도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전 세계의 평균 소득은 증가했지만 부국과 빈국 사이의 경제적 격차는 1900년 3배에서 1990년대 말 7배로 벌어졌다.” “1990년대 말 굶어 죽는 인구는 무려 4000만 명에 달한다.”

부정적인 측면을 과도하게 부각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럴진대 20세기를 어떻게 진보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저자의 반문과 “야만은 21세기에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저자의 전망이 날카롭게 다가온다. 역사를 좀 더 객관적이고 깊이 있게 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원제 ‘PROGRESS & BARBARISM’(1998년).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