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규 교수가 뇌성마비 환자 미영이에게 주사를 놓기 전 손가락 경직도를 알아보기 위해 손가락을 맞춰 보고 있다. 미영이는 이날 시술을 받은 뇌성마비 아이들 중에서도 또박또박 대답을 잘하고 주사를 맞을 때도 울지 않아 칭찬을 받았다. 사진 제공 한국앨러간
서울 성북구 안암동 승가원에 사는 중증장애아들은 최근 보톡스 주사를 맞았다. 얼굴의 주름살을 감춰 주는 약으로 알려진 보톡스는 손상된 근육을 마비시켜 나머지 근육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해 준다.
이들에게 무료로 보톡스 주사를 놓아 준 사람은 고려대 병원 재활의학과 강윤규(50) 교수. 강 교수는 8일 한국앨러간의 협찬을 받아 뇌성마비에 걸린 아이 11명을 치료했다.
강 교수는 의자조차 놓을 공간이 없어 선 채로 간이침대에 누운 미영이(10·여)의 팔다리를 굽혔다 폈다 했다.
“미영이 소원이 뭐야?”
“미스코리아요.”
“주사 맞으면서 울지 않으면 나중에 커서 미스코리아가 될 수 있을 거야.”
미영이는 울지 않았다.
강 교수는 아이 11명의 이름을 부르고 말을 나누면서 천천히 시술했다. 3시간이 훌쩍 흘렀다. 병원으로 환자를 부르는 의료봉사와는 달랐다. 그는 “아이 여러 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느니 저 혼자 움직이는 게 낫죠”라고 말했다.
○ 얘기 나누며 주사 놓다보면 3시간 훌쩍
그는 승가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들에게 “내일부터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 2주일 정도 지나면 걸을 때 균형감이 생기고 좋아질 겁니다. 한동안은 괜찮다가 서서히 효과가 떨어지게 됩니다”라고 설명한 뒤 문을 나섰다.
통증의학 분야 권위자인 강 교수는 봉사활동을 이곳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그는 장애인 단체를 자주 찾아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장애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게 그의 마음이다.
그는 요즘 ‘환상통’을 겪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절단장애인협회를 자주 찾는다. 환상통이란 잘려 나간 신체의 일부분에 느끼는 통증을 말한다. ‘잘려 나가 없는데 무슨 통증이냐’며 환상통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를 겪는 사람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프기 때문에 환상통은 ‘환장통’이라고도 불린다.
○ “교수님, 통증 믿어 줘서 고마워요”
강 교수는 “환상통은 잘리지 않고 남아 있는 근육이 강직되어 엉뚱한 부위가 아프다고 느껴지는 병”이라며 통증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 환자들은 “통증을 믿어 줘서 감사하다”는 문자메시지를 강 교수에게 보낼 정도다.
그는 아직까지 통증 유형에 대한 데이터가 없는 환상통을 연구하기 위해 환자들에게 ‘통증 일지’를 써 달라고 부탁한다. 어떤 환자는 문자와 e메일로 통증에 대한 정보를 강 교수에게 주고 있다.
“진료실에서만 환자를 보면 생활 속 고통을 알 수가 없잖아요. 이렇게 환자와 교류하다 보면 교과서에도 없는 통증을 알게 되고 치료법을 연구할 수 있게 되지요.”
강 교수는 많은 사람이 힘을 모으면 장애인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려대 의대 본과 2학년인 아들도 이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