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불리는 공공기관의 기관장과 감사는 어떤 사람들이 임명될까.
그동안 공공기관들은 공모방식을 통해 기관장을 뽑아 왔지만 억대 연봉을 받는 ‘알짜’ 공기업 기관장 자리의 절반 이상인 53.2%를 퇴직 공무원과 정치권 출신 인사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모기업 임직원이 자회사 기관장으로 임명된 경우도 적지 않아 순수한 민간 전문가가 기관장으로 임명된 것은 37%에 불과했다.
▽연봉 상위 20명, 평균 연봉 약 4억 원=공공기관의 기관장과 감사 중 연봉을 많이 받는 상위 20명의 평균 연봉은 3억9369만 원이었다.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은 한국산업은행 김창록 총재로 연봉이 7억1120만 원이었다. 산업은행 문창모 감사도 4억8540만 원을 받아 전체 중 4위를 차지했다.
양천식 한국수출입은행장과 강권석 중소기업은행장이 각각 6억3700만 원과 5억7600만 원으로 2, 3위를 차지했다.
연봉 상위 20명 중 15명이 재정경제부 산하 기관의 기관장과 감사였다. 나머지 중 3곳도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 한국은행 등 금융권 기관이 차지했다.
독립기관인 한국은행의 이성태 총재와 남상덕 감사의 연봉은 3억830만 원과 2억7910만 원으로 각각 13위와 17위를 차지했다. 한국은행과 역할이 비슷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연봉이 18만 달러(약 1억7000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적은 연봉이 아니다.
연봉 상위 20명 중 13명은 공무원 출신이었다.
김 총재는 행정고시 13회 출신으로 이후 계속 재경부에서 근무했으며, 양 은행장과 강 은행장은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 출신이다.
반면 민간 전문 최고경영자(CEO) 출신은 연봉 상위 20명 중 유일하게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 교수와 제조생산연구소 초대 소장을 지낸 서남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만이 연봉 4억6000만 원으로 5위를 차지했다.
연봉 상위 20명 중 해당 공공기관에서 자체 승진으로 기관장을 차지한 경우는 나종규 산은캐피탈 대표이사 사장(연봉 2억8730만 원)이 유일했다.
▽위로인사?=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 기관장과 감사 자리는 논공행상의 차원에서 거론되기가 일쑤였다. 실제 공공기관 기관장, 감사 중에는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에서 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인물들이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
연봉이 각각 3억6000만 원과 3억5694만 원에 이르는 이영탁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과 한이헌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인물들이다.
과거 재경부 공무원, 경제학 교수 등을 지낸 한 이사장처럼 기관장의 경우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고려되기도 하지만 감사의 경우에는 전문 분야와 관계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달 28일 한국조폐공사 신임 감사로 취임한 김광식(52) 씨의 경우 대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으로 10여 년 동안 활동했던 인물이다. 김 씨는 2004년 4·15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열린우리당 대전 동구 경선에 나섰다가 선병렬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패해 출마가 좌절된 적이 있다.
김 감사 외에도 억대 연봉을 받는 감사 가운데 한국농촌공사 박병용 감사, 대한주택공사 성백영 감사, 사학연금공단 노재철 감사, 신용보증기금 박철용 감사, 한국공항공사 권형우 감사, 한국수력원자력㈜ 조창래 감사, 한국수출보험공사 임좌순 감사 등도 열린우리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인물들이다.
한편 억대 연봉자 239명 가운데 나이가 확인되지 않은 12명을 제외하면 기관장 117명, 감사 35명 등 152명이 50대로 나타났다.
또 박긍식 한국원자력연구소 이사장, 서남표 총장, 이우재 한국마사회장, 이우영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이사장 등은 70대 억대 연봉자로 나타났다.
고려대 경영학과 이만우 교수는 “상당수의 공공기관 기관장과 감사가 전문적인 경영 마인드 없는 정치적인 인물이 많아 서로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 경영 효율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다”며 “기관장은 경영을 책임지고 감사는 회계와 자산관리 등 경영을 감시하는 제 역할을 하기 위해 공모제도와 추천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