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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곽상수]식물국회? 식물에 대한 모독

입력 | 2007-03-19 03:00:00


신문에서 ‘식물위원회’ ‘식물국회’라는 표현을 자주 본다. 기사 내용은 식물과 관련이 없으므로 유명무실 위원회, 일하지 않는 위원회로 표현해야 한다. 별 생각 없이 잘못 사용하는 표현은 참으로 고마운 식물에 나쁜 선입견을 갖게 할 수 있다.

식물위원회 등의 표현은 ‘식물인간’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국어사전은 ‘식물인간’을 머리의 대뇌에 상처를 입어 의식을 잃고 운동성은 없으나 호흡, 소화, 배설, 순환 등의 기능을 유지하는 환자로 설명한다. 과연 식물은 의식이 없고 운동성이 없을까.

피터 톰킨스 등이 저술한 ‘식물의 정신세계 (원제 The Secret Life of Plants)’라는 책은 식물이 생각한다는 사실을 밝힌 실험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한 가지 사례로 1960년대 미국 범죄수사관 백스터가 거짓말 탐지기를 식물에 적용한 결과 식물도 동료 식물을 죽인 사람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반응을 나타냈다.

식물은 물이 부족할 때는 생존하기 위해 땅속 수십 m까지 뿌리를 내린다. 동물은 생존하기 위해 물을 찾아 이동한다. 적응방식이 다를 뿐이다. 식충식물은 벌레를 포획해 영양분을 섭취한다. 식물도 바흐의 부드러운 음악을 좋아하고 시끄러운 기계음을 싫어한다. 식물이 좋아하는 음악을 이용해 작물의 수확량을 높이기 위한 녹색음악(green music)도 이용되고 있다.

인체 질병과 노화의 주범으로 활성산소가 지목되면서 활성산소를 제거하거나 생성을 예방하는 항산화 물질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식물도 사람이나 동물처럼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친다. 이상기후 등 높은 환경스트레스 조건에서 과다하게 생성되는 활성산소를 제때 조절하지 못하면 정상세포에 치명적 피해를 주며 심할 경우 세포사멸(죽음)을 초래한다.

식물은 뿌리를 내리면 동물처럼 적극적으로 이동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생존을 위해 동물보다 많은 종류의 항산화물질을 고농도로 생산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 식물의 환경 적응능력은 오히려 동물보다 발달돼 있는 것 같다.

최첨단 유전체(게놈) 연구에서도 식물과 동물의 유전자 구성이나 수는 기본적으로 거의 같다고 밝혀졌다. 연구 결과로 미뤄 볼 때 식물도 움직이고 느끼고 생각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식물이 우리와 같이 느끼고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식물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는 셈이다.

식물은 탄소 동화작용을 통해 우리에게 소중한 산소, 식량, 의약품과 각종 산업소재를 제공한다. 또 온실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효율적으로 흡수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고마운 공장이다. 우리는 식물의 존재를 항상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

우리 조상은 식물에 벼슬을 주고 고마움을 전했다. 세조는 속리산 입구의 소나무에 정이품을, 세종은 용문사 은행나무에 당상직첩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노산 이은상 선생은 나무의 고마움을 ‘나무의 마음’이란 시에 표현했다. 편리와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자연을 마구 파괴하는 행위가 늘어나면서 지구 규모의 기상재해와 사막화 등 재앙을 초래해 앞날이 걱정이다.

식물의 소중함을 알고 자연을 사랑할 때 사람을 괴롭히거나 환경을 파괴하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식물을 대표하는 자연과 우리가 하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인간만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인간 중심의 생명관에서 벗어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이들의 서식처를 생각하는 생태 중심의 생명관을 가질 때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조금씩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환경생명공학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