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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앨범 낸 77세 드러머 “난, 재즈청년”

입력 | 2007-03-19 03:00:00

“재즈는 곧 내 명예라고 생각해요. 60년간 비주류 음악을 해 왔지만 지금껏 부도난 적이 없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요?” 77세에 첫 독집 음반을 발표한 재즈 1세대 드러머 최세진 씨. 이훈구 기자


그 날 밤 그가 꺼내 든 것은 단순한 음반이 아니었다. 77세에 발표하는 데뷔 음반. "와 대단하시네요"라는 기자의 첫 마디에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노익장 과시', '화제의 음반' 등 단순한 취급은 싫다는 '할아버지'. 그가 손에 든 것은 바로 재즈 인생 60년이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누가 그런 음악 알아주냐'며 핀잔을 주곤 했죠. 하지만 재즈는 원래 외로운 음악이거든요. 한 평생 재즈에 미쳐 살아도 여태껏 '부도'낸 적 없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삶 아닐까요?"

16일 밤 서울 홍대 앞 재즈클럽 '문글로우'에서 만난 재즈 드러머 최세진(77) 씨. 홍덕표(트롬본) 강대관(트럼펫) 이동기(클라리넷) 신관웅(피아노) 등과 함께 '한국 재즈 1세대'로 활동해온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3월 말 발매되는 생애 첫 앨범 '백 투 더 퓨처'에 대한 기대는 '확신' 그 자체. 몇 번을 되물어도 "반드시 성공합니다"라는 말 뿐이다.

"얼마 전 꿈속에서 호랑이가 LP(레코드)를 물고 으르렁거렸어요. 무서워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는데 마음 속에 무언가 뜨거운 결의가 자리한 느낌이었죠. 살아있는 동안 멋진 작품 하나 남겨야겠다는 것…"

앨범 발표에 대한 결의를 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간 여러 음반 제작자들이 그에게 앨범 발매 제안을 했지만 재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대부분 헐값의 제작비를 제시한 것. "'재즈=돈 안 되는 음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라며 웃는 이 '할아버지'는 갑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어릴 적엔 클라리넷을 연주했는데 아버지는 제게 '폐병 걸린다'라며 클라리넷을 뺏었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인사동 뒷골목에서 흘러나온 재즈곡 '싱싱싱'에 반해 나뭇가지를 꺾어 바닥에 드럼을 쳤죠. 결국 재즈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 때문이랍니다."

1947년 '눈물젖은 두만강'으로 유명한 고(故) 김정구 선생에게 발탁된 것이 중 3때. 이후 1953년 '스카라 극장'에서 '박춘석 악단'과 첫 무대를 가졌고 홍콩, 필리핀 등 동남아 7개국 순회 연주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10년 전부터는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손자뻘 되는 학생들로부터 '교수님' 소리를 듣고 있다. 제자들과 함께 만든 앨범 '백 투 더 퓨처'의 절반은 그의 제자들 몫이다. 총 14곡이 담긴 이번 앨범에서 '싱싱싱', '스피크 로우', '아이 러브 유 포 센티멘탈 리즌' 등의 스탠다드 재즈곡과 '오빠생각' 같은 동요까지 제자들과 협연했다. "벌써 2집 구상도 해놓았다"는 그의 자신감은 끝이 없었다.

"지금 목표는 3년 후 있을 80세 생일 기념 공연입니다. '최세진 빅밴드'와 함께 생애 최고의 무대를 만들고 싶어요."

"손 다칠까봐 평생 운동도 못했다"는 그의 건강 비결은 당연히 '드럼'. "하루 종일 드럼을 연주하며 땀을 빼면 그렇게 좋을 수 없어요"라며 손사래치는 이 할아버지, 아니 '재즈청년'의 신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답은 단순했다.

"하하. 내 별명이 원래 '최고집'이요. 무대포로 밀어버리는 정신, 그게 다에요. 할머니 얼굴만 쳐다보고 살면 뭐해요? 나에겐 60년 된 친구 드럼이 있으니…"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