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18일 2007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 남자부에서 1위로 결승 테이프를 끊고 있다. 마라토너로는 ‘환갑’으로 여겨지는 그의 나이 37세는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특별취재반
■이봉주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우승
2시간 8분 4초… 막판 혼신의 역전 드라마
‘몸으로 쓴 고행의 서사시’에 온국민 환호
으랏차차! 봉달아! 눈물나게 하는 봉달아!
‘봉달이’ 이봉주(37·삼성전자)를 보면 속이 짠하다. 안쓰럽다. 출발 전 컨디션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냥 뭐∼” 하며 얼버무린다. 쪼글쪼글한 얼굴, 덥수룩한 턱수염. 검은 선글라스와 듬성듬성한 머리카락. 몸은 마른 명태처럼 기름기가 거의 없다. 마치 ‘뼈에 가죽만 입혀 놓은 것’ 같다.
마라토너에게 35km 지점은 아득한 경계다. 일단 그 경계를 지나면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도 가도 사막 길. 타는 목마름. 휘청거리는 다리. 터질 것 같은 심장. 길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나타났다가 또 사라진다.
*이봉주 결승선 통과장면
18일 열린 2007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동아일보사 서울시 대한육상경기연맹 공동 주최)에서 이봉주가 1.575km를 남기고 보기 드문 뒤집기 역전 ‘인간드라마’를 연출했다.
이봉주는 2시간 8분 04초를 기록해 케냐의 폴 키프로프 키루이(2시간 8분 29초)를 따돌리고 1위로 골인했다.
[화보] 이봉주, 2007 서울국제마라톤대회 우승
[화보] 2007 서울국제마라톤대회 출발선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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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 2007 서울국제마라톤 우승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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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는 40.62km 지점에서 불굴의 투지로 30여 m를 앞서 가던 키루이를 따라잡았다. 키루이는 갓 뽑은 새 차나 같다. 그는 기껏 공식대회에서 이번까지 5번 완주했을 뿐이다. 2만∼3만 km쯤 달린 ‘씽씽 잘 나가는’ 세단이라고나 할까. 개인 최고기록도 지난해 로테르담에서 세운 2시간 6분 44초. 이봉주(2시간 7분 20초)보다 36초 빠르다. 더욱이 그는 젊다. 이봉주와는 10년 차.
이봉주는 너무 많이 뛰었다. 한마디로 40만 km쯤 뛴 승용차라고 할 수 있다. 16년 동안 35번 완주(황영조는 5년 동안 8회)는 기네스북에 올라야 할 정도다. 마라토너가 대회에 한 번 출전하려면 최소 매주 330km씩 12주 동안은 달려서 몸을 만들어야 한다. 이봉주는 37번(2번 도중 기권) 대회에 출전했으므로 훈련 거리만도 14만6520km(3960km×37)에 이른다. 여기에 실제 대회에서 달린 거리(42.195km×35+하프마라톤 및 역전대회) 약 1703.41km를 더하면 14만8223.41km나 된다. 지구를 약 3.7바퀴(지구 한 바퀴 약 4만 km) 돈 셈이다.
마라톤의 엔진은 폐와 심장이다. 이봉주의 최대 산소 섭취량(1분간 몸무게 kg당 산소 섭취량)은 78.6mL(20대 평균 남자 45mL). 황영조의 82.5mL보다 적다. 무산소성 역치도 70% 정도로 황영조의 79.6%보다 낮다. 무산소성 역치란 어느 순간 피로가 급격히 높아지는 시점을 말한다. 가령 이 값이 50%라고 한다면 신체 능력이 50%를 발휘할 때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 운동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봉주는 35km 지점에서 무산소성 역치가 한계점인 70%를 지났다. 기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몸은 바닥났다. 하지만 그의 피와 땀과 눈물이 남아 있었다. 꺾이지 않는 의지가 있었다. 끈기와 투지로 무소의 뿔처럼 달렸다. 키루이는 이봉주보다 25초 뒤에 들어왔다. 약 137m 거리. 봉달이는 이 137m의 ‘머나먼 길’을 ‘깡’과 ‘오기’라는 ‘정신 근육’으로 한 방에 날려 버렸다. 이런 노장이 어디 있는가? 나이가 뭐 대순가?
[화보] 이봉주, 2007 서울국제마라톤대회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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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아프리카 선수들 보다 빨랐어”
‘달림이’들 서울 도심에서 축제 한마당
마라톤은 고행이다. 몸으로 쓰는 시다. 참다 참다 마침내 터져 나온 울부짖음 같은 것. 사람들은 스스로 고행을 함으로써 저마다 꽃을 피운다. 이봉주도 그렇게 ‘바늘로 우물을 파듯’ 꽃을 피웠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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