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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민칼럼]국민 눈 밖에서는 지금 이런 일이…

입력 | 2007-03-19 20:19:00


지금 장관들 중 많은 이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 사회 시간에 대한민국 부처 장관들 이름을 외우고 시험도 치른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왜 그런 걸 외워야 했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장관들이야 대개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았을 터이니 그 정도 문제는 다 맞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에게 똑같은 시험을 보게 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만점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 암기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장관 수가 어릴 적보다 최고 네 배나 늘어 그 많은 이름을 다 기억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 정부 조직상 장관으로 호칭되는 자리는 무려 27개로 세계 최대급이다. 국토가 한국보다 44배 넓은 미국도 장관 자리가 14개밖에 안 되고,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한국의 7배를 넘는 경제대국 일본 역시 11개에 불과하다. 장관 자리가 이렇게 흔해진 것은 물론 역대 정부들이 ‘꾸준히’ 관료조직을 키워 온 결과다. 참여정부에서도 장차관급 자리는 20% 이상 늘었는데 그에 덧붙여 코드 인사, 회전문 인사로 끼리끼리 모여 앉다 보니 이 정권 들어 장관에 대한 국민의 존경심과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장관은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일 것이라는 과거의 순박한 관념도 사라졌다.

이 나라는 요즘 장관 풍년 시대

장관 수가 늘어남으로써 행정의 낭비, 재정의 손실이 크게 불어났지만 국민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눈에 보이는 사소한 손해에는 날카롭게 반응하지만 막상 세금 누출처럼 눈 밖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손실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모습이다. 늘어난 장관들의 급여와 활동비로 연간 수백억 원을 국민이 추가로 부담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구를 신설할 때 함께 태어나는 부처이기주의 때문에 장관들이 다퉈 조직을 키운다는 점이다. 그 결과 새로 자리를 차지한 공무원들은 단지 조직의 존재 이유를 위해서라도 일을 만들어 내 뭉텅이 국가 예산을 눈먼 돈처럼 사라지게 한다.

과학기술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우주비행사 프로그램이 그런 사례다. 찬반 양론이 있겠지만 쉽게 얘기하면 남의 나라 패키지 투어 상품에 합류하듯 두 명의 한국인을 외국 우주선에 태워 잠시 여행시키는 데 260억 원을 쓰자는 것이다. 서구의 백만장자들이 관광하듯 우주유람을 즐기는 시대에 한국에서는 우주여행이 국책사업이란다. 우주선 발사 기술에 돈을 쓴다면 국방이나 항공산업에 파급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구생성의 비밀을 찾아 우주로 나선다니 이 얼마나 한가로운 객담인가.

정부 조직을 과기부와 교육인적자원부, 여성가족부 노동부 보건복지부 그리고 해양수산부와 농림부 또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로 세분해 놓은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요즘 정부과천청사의 고위 관리들을 만나 보면 쪼개진 정부조직 때문에 생기는 부처 간 갈등으로 골치가 보통 아프지 않다고 한다. 업무가 뒤엉켜 있다 보니 한 가지 일을 결정하는 데 서너 부처가 모여야 한다. 그래서 결론은 쉽게 안 나고 부처 간 이견과 갈등을 해소하는 데 들어가는 조정 코스트는 겁이 날 정도로 새어 나간다. 그들의 시간과 우리의 세금은 그렇게 소모되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강한 국가의 조건’이라는 저서에서 ‘미국은 국가 활동의 범위를 면밀하게 한정하는 작은 정부체제의 국가지만 그 범위 내에서 법과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능력에서는 매우 강한 나라’라고 했다. 그가 볼 때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노무현 대통령은 늘 ‘국민에게 서비스 잘하는 큰 정부’를 말하지만 나는 이 정부 아래서 좋은 서비스 잘 받고 산다는 국민을 만나고 싶다. 그런데도 (그 이름만 들어도 국민이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젓게 되는) 어느 장관은 최근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언론이 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분별없는 말이나 하는 판이니 이런 정부에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을까.

큰 정부 주장이 진짜 “국민 사기극”

그렇다면 지금 국민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대선 후보들이 작은 정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집권 즉시 유사조직을 통합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 5년, 국민이 이 정권에서 당한 가렴주구(苛斂誅求)의 고난에서 벗어나려면 이번에는 꼭 그런 후보를 찾아 선택들 하시기를 바란다.

이규민 大記者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