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하는 저널 ‘서바이벌’에는 최근 프랑스와 미국의 관계에 관해 뛰어난 분석을 담은 기고문이 실렸다. 올해 프랑스 대통령 선거와 내년 미국 대선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양국 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겠지만 이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프랑스가 이를 앞장서 비판하면서 지속돼 온 양국 간 적대 관계가 끝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당시 양국 관계는 미국 하원의원들이 구내식당의 감자튀김 ‘프렌치프라이’를 프랑스가 밉다며 ‘프리덤(자유) 프라이’로 바꿔 부를 정도로 험악했다. 반면에 2009년 새로 출범할 미국 정부는 동맹 관계를 중시하고 다각적 외교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의 유력 대선 주자 3명도 미국과의 화해를 당연시한다. 보수당 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는 지난해 9월 워싱턴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한 프랑스의 ‘오만한’ 적대감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 뒤 소속 당의 압력에 못 이겨 자주 외교를 강조하는 드골주의로 선회했지만 대통령이 된 뒤 그가 (2003년 외교장관 시절 유엔에서 이라크전 반대 연설을 한)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를 흉내 낼 위험은 없다.
사회당 대선 후보인 세골렌 루아얄은 프랑스의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강조하지만 반미 정서를 갖고 있지는 않다. 중도파인 기독교민주당 후보 프랑수아 바이루는 미국인 친척이 있다. 그러나 가족 정서가 외교 정책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와 미국 간에 되풀이되는 긴장 관계는 그럴 만한 내력이 있다. 유럽 통일의 리더로서 프랑스는 전후 미국의 지지를 받으며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프랑스가 1954년 유럽 국방위원회를 무력화하고 1956년 수에즈를 침공하면서 미국과 관계가 틀어졌다.
샤를 드골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탈퇴한 뒤 이중적인 대미 정책을 추진했다. 즉, 서구 세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문제에는 동조하고 미국의 헤게모니와 관계되는 일에는 적대적인 자세를 취했다. 지스카르 데스탱,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임기 초반에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모색했으나 양국 간 이해관계가 다름을 절감해야 했다.
2003년부터 미국은 유럽연합을 분열시키려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앞으로 선출될 양국의 대통령도 양국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현실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은 안보 문제에서 미국에 의존적이지 않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나 레바논 시리아 이란 문제에 대해서도 유럽과 미국은 서로 다른 평가를 하며 추구하는 목적도 다르다. 프랑스는 나토가 미국의 전략적 도구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2002년 유럽인의 64%는 미국의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이제는 57%가 부정적으로 본다.
미국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개입주의와 무력 외교를 통해 민주적 리더십 아래 세계를 통일하려는 유토피아적 목표를 고수할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세계가 그리 위험하지 않고, 선과 악을 나누기도 어렵다고 여기며 세계가 통일될 것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프랑스는 주권 문제에 매우 민감하고 동맹국을 하인 취급하는 미국의 정책에 거부감마저 표해 왔다. 이런 프랑스는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선출된 뒤 미국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총체적 정책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