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무회의는 손학규 씨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비난으로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모두(冒頭)발언을 통해 “민주주의 원칙을 파괴하고 반칙하는 사람은 진보든 보수든 관계없이 정치인 자격이 없다. 보따리장수같이 정치를 해서야 나라가 제대로 되겠느냐”며 손 씨의 한나라당 탈당을 원색적으로 공박했다. 당적(黨籍)까지 정리한 대통령이 정당의 당직자회의나 대변인 논평에서나 들을 정도의 정치적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발언 내용에 대한 시시비비를 떠나 국무회의를 정치로 오염시켰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국무회의는 의장인 대통령과 부의장인 국무총리, 그리고 국무위원인 장관들이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국사를 다루는 자리다. 국정의 기본계획, 선전(宣戰)과 강화(講和), 헌법개정안, 군사에 관한 중요사항 등 17개항은 국무회의 심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헌법 89조). 이런 국무회의를 대통령이 앞장서 정치화했으니 국정이 제대로 굴러가겠는가.
어제 강영훈 전 국무총리는 본보 논설위원에게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가 뭘 하는 곳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런 대통령도 걱정이지만 국무회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바라만 보는 국무위원들도 문제”라고 개탄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대통령들이 국무회의를 ‘통과의례’쯤으로 가볍게 여긴 적이 없지 않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드물었다.
대통령의 발언 내용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현실정치에 빠삭한 그가 작심한 듯 손 씨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자신을 배제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해 보려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신당 추진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이는 명백한 정파적, 정략적 정치개입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관가(官街)는 물론 사회 전체가 대권의 향배에 따라 요동칠까 걱정된다. 대통령이 자리를 가리지 않고 정치적 발언을 해 대면 국정은 물론 나라가 표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노 대통령은 국정의 중심체로서의 국무회의의 격(格)을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