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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칼럼]좌익소아병 치유의 세 번째 기회

입력 | 2007-03-21 21:09:00


한때 좌익 사상에 나부끼는 젊은 사람들을 나는 미워할 수가 없다. 나는 그들을 평가하고 좋아하기조차 한다. 그들은 악한 동기에서 좌익 편이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악이라고 생각하는 걸 부정하고 선이라 생각하는 것을 추구해서 좌익에 기울어진 경우가 많다.

물론 일신의 영달을 위해 군부독재 체제에 빌붙는 우파처럼 붉은 독재 체제에 빌붙어 좌파가 되는 수많은 순응주의자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좌우간에 참된 우파도 좌파도 아니고 다만 개인적 야심에 불타 있는 기회주의자들이다. 내가 평가하려는 좌파란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바꿔 보려는 사람, 현실 동조 아닌 현실 개혁의 정열에 불타 있는 사람들이다.

젊은이들은 또 사회 변혁의 현실적 동기를 넘어 세계와 역사를 해석해 보려는 이론적 동기에서 좌파에 기울어지기도 한다. 사회가 무엇인가. 왜 빈부의 격차는 벌어지는가. 역사는 무엇이며 인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생각하는 젊은이라면 한번쯤 품어 보는 의문이다.

이른바 우파 내지 중도파엔 이런 난문을 속 시원하게 풀어 주는 포괄적인 이론이 없다. 그러나 좌파에는 그와 같은 세계관 역사관의 문제에 해답하는, 중학생도 쉽게 알아들을 한 패키지의 이론 체계가 있다. 문제의식이 약한 편이 아니라 강한 편에서, 머리가 나쁘지 않고 좋은 젊은이가 쉽게 좌파에 기울어지는 까닭이다. 그들을 덮어놓고 미워할 수 있을까.

집값은 뛰고… 빈곤층은 늘고…

8·15 이후 6·25까지 남한의 상당수 지식인과 학생들이 좌경했다. 광복 직후의 눈앞에 전개된 남쪽의 물질적 정신적 상황 속에선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럴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북쪽은 미화됐다.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마약이 사람의 의식과 정열을 사로잡으면 이젠 거의 치유 불가능한 ‘좌익소아병’에 감염되기 일쑤다.

이 병을 치유하는 데엔 마치 상사병의 경우처럼 오직 한 가지 처방만이 확실할 뿐, 아버지의 몽둥이도 어머니의 눈물도 효력이 없다. 그 단방처방이란 사랑하는 것(사람)이 눈앞에 나타나 주는 것이다. 6·25남침전쟁 이후 남쪽의 좌파가 깔끔하게 일소된 것도 북의 ‘인공’이 눈앞에 나타나 줬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년, 남쪽의 젊은이 사이에 또다시 좌익소아병이 급격하게 번져 갔다. 젊은이들이 좌경하는 데엔 너무나도 충분한 이유를 ‘1980년의 광주’와 그 속에서 집권한 신군부의 행적이 대줬다. 1950년 이후 그때까지 30년 동안 듣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친북 반미 구호가 대학 캠퍼스에 메아리치고 전도유망한 수많은 젊은이가 ‘친북좌파’란 소아병에 걸려들었다.

답답한 일이었다. 썰렁한 고문실도, 따뜻한 가정도 치유할 수 없고 유일한 처방약은 그러나 두 번 다시 그걸 쓰기엔 대가가 너무 비쌌다. 그런 절망적 상황에서 1989년 동유럽 소비에트 체제가 제풀에 무너져 버렸다. 좌익소아병을 치유할 두 번째 기회, 가장 값싸게 치유할 기회였다. 386세대는 복 받은 세대라 나는 느꼈다.

그러나 먼 유럽에서 공산 체제가 무너졌다는 것은 값은 싸지만 약효는 신통치 않은 처방이었던가.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오늘에도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좌익소아병자들이 꽤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들은 노무현 정부의 요로에 자리 잡아서 참여정부를 좌파 정부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좌파 정부 4년의 참담한 성적표

이제 좌파 정부 4년의 장부를 서서히 챙겨 볼 때이다. 결과는 참담하다. 참여정부 4년 만에 진 나랏빚이 150조 원! 그건 정부 수립 이후 54년간 역대 정권이 늘린 채무 총액 134조 원을 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정부 4년 동안 빈곤층은 11%에서 20%로 거의 배가하고 개인파산 신청자는 12만 명을, 취업 준비생은 50만 명을 넘고 서민의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만 간다. 대통령의 잦은 국빈방문에도 아랑곳없이 우리의 대외관계는 고립돼 가고 안보는 불안하기만 하다. 좌파 정부 4년의 집권 결과가 이렇다.

긍정적인 면은? 나는 노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6·25처럼 남침전쟁을 부르지 않고 좌파 정부의 실정을 에누리 없이 보여 줌으로써 남쪽 젊은이들의 좌익소아병을 치유할 세 번째 기회를 제공해 줬다는 데 있다고 본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