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15) 양은 서울 지역교육청의 영재교육원에 다니다 어머니의 반대로 한 한기 만에 그만뒀다. 그는 화학이 좋아 과학고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여자가 기초과학을 하면 취직도 안 된다”면서 의대나 약대에 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정 양처럼 여학생들은 수학 과학 분야에 재능이 있어도 부모가 아들에 비해 딸의 재능을 계발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아 영재교육에서 소외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학생, 영재교육 소외=한국여성개발원이 수학·과학 영재교육기관 417곳과 부산 한국과학영재학교를 대상으로 영재교육 성별 실태를 조사한 결과 영재교육을 받는 여학생은 전체 학생 2만6715명의 34.9%인 931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별 여학생 비율은 일선 학교에 설치된 영재학급은 42.4%, 학교 추천으로 대상을 뽑는 교육청 영재교육원은 32.7%, 대학 영재교육은 26%, 전국에서 선발하는 과학영재학교는 15.2%였다. 선발 과정이 까다로울수록 여학생 비율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과학영재학교는 2003년 개교 당시 신입생 150명 중 여학생이 30명(20%)이었지만 올해는 14명(9.3%)에 그쳤다. 여학생의 지원자 대비 합격률은 10.1%에서 2.3%로 뚝 떨어졌다.
서울과학고도 지난해 신입생 156명 중 여학생은 27명(17.3%)이었지만 올해는 21명(13.4%)으로 줄었다.
부모가 자녀의 영재성을 발견하는 시기도 남학생이 평균 7.83세, 여학생이 평균 8.72세로 여학생이 늦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부모가 영재성을 발견한 이후에 취한 행동은 남학생의 경우 교재·교구 마련(51.5%), 수학·과학 체험활동 마련(34.5%) 등 교육 활동이었지만 여학생의 경우 칭찬(30.8%)에 그친 비율이 높았다.
여성개발원 정경아 연구위원은 “남학생 부모가 여학생 부모보다 자녀의 영재성 계발에 적극적인 것으로 조사됐다”며 “부모부터 편견을 버려야 자녀의 재능을 키워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여자가 무슨 과학” 편견 버려야=전문가들은 여학생들이 영재교육에서 멀어지는 것은 남녀의 능력 차이보다는 사회·문화적 요인 때문으로 보고 있다.
대체로 남학생은 수학·과학, 여학생은 어학·인문 분야에 강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대 과학영재교육센터 조한혁(수학교육) 교수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공간지각 능력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수리나 과학 능력이 더 낫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어릴 때 아들에게는 자동차, 딸에게는 인형을 사주는 등 성장과정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관심 분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교육청 이현자 장학사도 “일선 학교에서도 영재교육원에 남학생을 주로 추천하기 때문에 지원 대상자 자체가 적다”고 말했다.
여성을 기피하는 이공계의 풍토도 문제다. ‘여성과학인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서울 무학여고 신춘희 교감은 “여자는 육아 때문에 연구에 집중할 수 없다는 선입관이 이공계에 팽배해 있다”며 “이 때문에 이공계 여성이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고 부모도 딸이 어려운 공부를 하길 원치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