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배우는 사람이 棋譜(기보)를 보면서 연구할 때는, 가끔 바둑판을 옆으로 놓고 본다고 한다. 바둑판은 열아홉 줄로 된 정사각형이므로 옆에서 본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옆에서 보면 바둑을 두는 당사자가 아니라 마치 옆에서 훈수를 두는 처지에 있는 것 같아서 바둑이 새롭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다.
이와 같이 바둑도 훈수를 두는 처지에서 보면, 바둑을 두는 당사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훌륭한 수가 나올 수 있다. 왜 그럴까? 바둑을 두는 당사자는 승부라는 욕망이 있지만 훈수를 두는 사람에게는 그런 심정이 없으므로 상황이 훨씬 바르게 보인다. 이런 현상은 삶의 현장에서 흔히 나타난다. 욕심을 버리면 보이는 진실이 욕심에 사로잡혀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
‘順理則裕(순리즉유), 從欲惟危(종욕유위)’라는 말이 있다. ‘順’은 ‘순종하다, 따르다’라는 뜻이다. ‘順序(순서)’는 ‘따라야 하는 차례’라는 뜻이며, ‘順從(순종)’은 ‘따르고 복종하다’라는 말이 된다. ‘理’는 ‘이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順理’는 ‘이치에 따르다’라는 말이 된다. ‘裕’는 ‘넉넉하다’라는 뜻이다. ‘餘裕(여유)’는 ‘나머지가 있을 만큼 넉넉하다’라는 말이 된다. 물건에 여유가 있으면 물건이 충분히 있는 것이고, 마음에 餘裕가 있으면 심정이 평안한 것이다. ‘從’은 ‘따르다, 복종하다’라는 뜻이고, ‘欲’은 ‘욕망, 욕심’이라는 뜻이다. ‘惟’는 ‘오직, 다만’이라는 뜻이다. ‘危’는 ‘위태롭다, 두려워하다’라는 뜻이다.
이상의 의미를 정리하면 ‘順理則裕, 從欲惟危’는 ‘이치를 따르면 여유롭고, 욕심을 따르면 다만 위태롭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하면 이치를 따라 행동하면 마음이 평안하여 여유로운 상태가 되므로 진실이 보이고, 욕망을 따라 행동하면 진실이 보이지 않으므로 위험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어떤 행동을 하거나 판단을 할 때마다 기준이 진실인가 아니면 나의 욕망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