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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율리시스’ 세번째 번역판 내놓은 김종건 교수

입력 | 2007-03-26 02:56:00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번역에 근 반세기의 세월을 바친 김종건 전 고려대 교수는 “영문학에서 ‘언어의 천재’라 불리는 셰익스피어의 경우 38개의 전 작품에 모두 2만여 개의 어휘를 사용했지만 조이스는 ‘율리시스’ 단 한 작품에만 2만9899자의 어휘를 사용했다”며 조이스의 천재성을 강조했다. 박영대 기자


《“사람들은 ‘율리시스’가 난해하고 비극적이라는 선입관을 갖지만 실상은 아름다운 ‘사랑의 찬가’이자 배꼽 잡도록 재밌는 코미디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제임스 조이스(1882∼1941)의 ‘율리시스’ 세 번째 번역판(생각의나무)을 내놓은 김종건(73) 전 고려대 교수를 만난 뒤 그 어렵다는 조이스의 작품이 꿀단지처럼 달콤하게 느껴졌다. 비록 그 자신은 서문에서 “지난 근 반세기를 조이스 연구와 그 번역, 특히 ‘율리시스’의 번역을 위해, 마음 밑바닥이 무거운 쇠사슬로 묶인 듯 허우적거리며 살아왔다”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같은 자리를 맴도는 ‘핀에 꽂힌 벌레’에 비유했지만.》

그와 ‘율리시스’의 만남은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내 최초로 ‘율리시스’ 원어 강독을 시작한 조지 레이너 교수를 만나면서였다.

“조이스는 ‘율리시스 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 뒀기에 앞으로 수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분주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죠. 당시 난 학자로서 평생을 바칠 작품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딱’이었어요.”

‘겁 없는 마음’으로 도전한 그는 1968년 국내 최초로 ‘율리시스’(정음사)를 번역했다. 그 공로로 이듬해 한국번역문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제대로 번역했는가 하는 회의가 끊이지 않았다.

1984년 독일 뮌헨대 교수인 헤다 가블러가 조이스 친필 원고를 바탕으로 5000여 개의 오류를 바로잡아 가블러판 ‘율리시스’를 출간했다. 김 전 교수는 이를 토대로 해 1988년 제임스 조이스 전집(범우사)의 하나로 재판을 냈다.

다시 근 20년이 흘러 4000여 개의 주석과 48쪽의 희귀 화보, 외설 시비 때문에 금서령이 내려졌던 이 책의 미국 내 출간을 허용한 존 M 울지 판사의 판결문 등까지 합쳐 1323쪽에 이르는 세 번째 번역판이 출간된 것이다.

“1988년 전집에는 사실 한 권이 빠져 있었어요. 조이스가 17년에 걸쳐 집필한 ‘피네간의 경야(經夜)’였죠. 무려 65개국의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번역 불가’라는 낙인이 찍힌 작품이었는데 2002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번역에 성공했어요. 그때 조이스의 언어유희에 새롭게 눈을 뜬 부분이 있어서 ‘율리시스’의 번역에 다시 도전했습니다.”

‘율리시스’는 고대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을 마친 뒤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의 10년에 걸친 모험을 그린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의 내용을 토대로 현대인의 내면적 방황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율리시스란 오디세이의 라틴어 이름이다.

“조이스는 엄청난 독서광이라 말년엔 밀턴처럼 눈이 멀 정도였습니다. 그런 그가 가장 좋아한 문학작품이 오디세이였어요. 그는 오디세우스를 3가지 면에서 가장 이상적 인물로 봤거든요. 인격적으로 가장 원만한 인간이자 집에선 가장 성실한 가장, 밖에선 가장 훌륭한 군인이라는 점에서였죠.”

‘율리시스’의 독창성 중 하나는 10년에 걸친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단 하루로 압축해 냈다는 점이다. 조이스는 아일랜드 더블린을 무대로 1904년 6월 16일 단 하루 동안 벌어진 평범한 광고회사 외판원이자 한 집안의 가장인 리오폴드 블룸의 일상 속 의식의 방황을 장편소설로 엮어 냈다.

“오늘날 ‘블룸스데이’라고 축하받는 이날에는 아내 노라에 대한 조이스의 깊은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6월 16일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노라와의 첫 데이트에 성공한 날이었거든요. 당시 노라는 가방 끈 짧은 호텔 여직원에 불과했지만 조이스는 ‘내가 사랑하는 것은 오직 그녀의 영혼’이라며 평생 아내 곁에 머물렀죠.”

그러나 ‘율리시스’는 뭇 여성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오디세우스, 정숙한 아내 페넬로페, 아버지를 우상시하는 아들 텔레마코스라는 오디세이의 행복한 삼위일체 구조를 철저히 무너뜨린다.

블룸의 아내 몰리는 남편이 가장 경멸하는 남자와 달콤한 불륜에 빠져 있다. 블룸은 이를 눈치 채고도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마사라는 여성과 익명의 연애편지를 교환하고 해변을 산책하다 만난 소녀를 훔쳐보며 수음을 통해 울분을 해소하는 소심한 남자다. 블룸의 정신적 아들이라 할 만한 스티븐 데덜러스는 블룸의 ‘부성애’를 뿌리치고 ‘가출’을 감행한다.

“‘율리시스’에 대해선 ‘현대인의 분열된 영혼과 가족의 붕괴를 그린 비극적 세계관이 담겼다’는 부정적 해석이 지배적인 게 사실이죠. 하지만 몰리의 독백으로 이뤄진 마지막 18장이 ‘Yes’로 시작해서 ‘Yes’로 끝난다는 점을 상기해야 됩니다. 블룸은 숱한 상처를 받으면서도 끝내 가정을 버리지 않습니다. 데덜러스도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암시를 남기죠. 조이스에겐 ‘결혼의 축가’와 다름없는 이 작품은 비극이 아니라 부정을 뛰어넘는 긍정의 미학이 담긴 코미디입니다.”

그는 ‘율리시스’의 이런 긍정적 세계관을 작품의 고향인 더블린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룸스데이엔 공영방송이 일기예보도 접고 아침부터 30시간에 걸쳐 율리시스를 낭독하는데 더블린 사람들은 이 방송을 듣다가 폭소를 터뜨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100여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의 모델이 더블린에 살던 실존인물이기 때문이다. 또 조이스 동상을 더블린 시내의 시장 바닥이라는 ‘저 낮은 곳’에 세움으로써 그가 학자들의 작가이기에 앞서 대중소설가임을 상기시키고 있다고 한다.

“흔히 ‘율리시스’를 모더니즘 예술의 절정으로 꼽지만 가장 포스트모던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언어유희뿐 아니라 공상과학과 판타지, 스릴러, 코미디가 함께 담겨 있거든요. 그래서 조이스 연구자들에게 포스트모던은 탈(脫)모던이 아니라 속(續)모던이라고 할 수도 있죠.”

“조이스 작품은 처음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빠져나오기는 더 힘들다”고 털어놓는 노학자의 경기 용인시 자택 서재에는 여백마다 빽빽한 글귀를 적어 놓고 다시 번역 중인 ‘피네간의 경야’ 원서가 펼쳐져 있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김종건 前고려대 교수▼

△1934년 경남 진해 출생 △1953년 진해고 졸업 △1957년 서울대 사범대 영어교육학과 졸업 △1962년 서울대 대학원 석사 △1973년 미국 오클라호마 주 털사대 문학박사 △1977∼1981년 중앙대 영문학과 교수 △1979∼1991년 한국제임스조이스학회 회장 △1981∼1999년 고려대 영어교육과 교수

△저서 ‘율리시즈와 문학의 모더니즘’ 등과 역서 ‘제임스 조이스 전집’과 ‘피네간의 경야’ 등. 1969년 ‘율리시스’ 국내 첫 번역으로 제9회 한국번역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