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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경제]실업급여, 과연 좋기만 한 제도일까

입력 | 2007-03-28 03:01:00

일러스트레이션 장수진(www.jangsujin.com)


[사례]

김모(48) 씨는 지난해 말 20년 가까이 근무하며 청춘을 보냈던 회사에서 해고됐다.

그는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고용지원센터를 찾았다. 회사에서 받던 월급보다는 당연히 적었지만 그래도 일을 하지 않고 받는 돈으로 치면 꽤 많았다.

‘실업급여마저 없었으면 요즘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몰라. 실업급여, 참 좋은 제도인 것 같아.’

김 씨는 그저 고마운 마음에 지난번처럼 ‘실업인정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그런데 이번엔 어쩐 일인지 노동사무소 직원의 “아직 취업을 못하셨나요?”라는 질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네”라고 답하면서도 가슴이 쿵쿵 뛴다.

사실 김 씨는 해고 이후 몇몇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도 몇 번 봤다.

남들보다 기술이나 학력이 돋보인 것은 아니지만 인상이 좋아서인지 면접을 했던 회사에선 대체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지난주엔 한꺼번에 두 곳에서 함께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슬그머니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A사 보수는 전에 다니던 곳에 비해 80%밖에 안 되는데 일은 엄청 많이 시킨다는 소문이 나 있던데….’

‘B사는 너무 멀어서 출근하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하고 버스도 두 번이나 갈아타야지.’

이런 저런 고민 끝에 김 씨는 출근을 포기하고 다른 직장을 더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집에서 가깝고 월급을 더 많이 주는 직장을 구할 수 있겠지.

그때까지 실업급여나 받으면서 재충전한다고 생각하지, 뭐.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 다른 곳을 알아보기도 어려울 텐데….’

결국 매일 만원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며 직장 상사의 눈치를 살피고 힘들게 일하느니, 좀 적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내 생활을 즐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다 됐습니다.” 김 씨의 이런저런 생각은 노동사무소 담당자의 ‘호출’로 일단락됐고, 실업 인정을 받자 곧 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시금 ‘안정된’ 실업자 생활의 시작이었다.

[이해]

이 세상에 위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위험은 주위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

집에 불이 날 위험,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반대로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낼 수도 있다.

예상치 못했던 암 세포가 내 몸에서 자라고 있거나 철석같이 믿고 있던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될 수 있는 등 위험의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보험상품은 위험이 닥쳤을 때의 불행과 금전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났다.

평소 여유가 있을 때 조금씩 대비(보험료)하면 위험이 예고 없이 닥치더라도 상당한 규모의 보험금을 받아 해결할 수 있다.

실제 보험은 위험을 예측할 수 없는 일반인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돕는 좋은 제도다.

실업급여 역시 보험의 한 종류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실업자가 되더라도 생계 걱정 없이 새 기술을 익히거나 새 직장을 구하라는 취지에서 실업급여가 도입됐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만을 낳는 것이 아니듯 보험 역시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부른다.

김 씨와 같은 사람들을 만들기 때문이다.

즉, 일단 실업자가 된 사람은 실업급여로 인해 구직 노력을 게을리 하고 오히려 일자리를 거절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처럼 위험을 해결해 주려는 보험에 의지해 위험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고 결과적으로 위험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도덕적 해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사고를 100% 보상해 주는 완전 보험에 가입한 운전자는 운전을 과감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치료비를 100% 지불해 주는 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건강관리와 질병 예방에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모두 도덕적 해이의 전형적인 사례다.

도덕적 해이가 보험시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속속 마련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사고가 나면 차 수리비용의 일부를 운전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자동차보험이 사용하는 보완책이다.

김 씨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최대 7개월인 것도

이런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한진수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학 박사

정리=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