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다음달 초로 취임 1년을 맞는다.
한은 부총재 시절 박승 총재에 이어 내부 승진으로 총재 임명이 유력시될 때부터 `매파' `강성의 원칙주의자' 등으로 시장의 평가받았던 이 총재는 1년 동안 이러한 평가에 어긋남 없이 한은 내부 개혁과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추구해 왔다는 게 중론이다.
◇ 금리인상 관철 …유동성 축소에 모든 수단 동원 = 이 총재는 작년 4월 초 취임 후 6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콜금리 인상을 단행한 데 이어 작년 말에는 지급준비율을 16년 만에 전격적으로 인상, 시장에 놀라움을 안겨줬다.
이어 중소기업 지원자금인 총액한도대출의 한도액을 줄이는 조치까지 취해 시중의 과잉유동성 축소를 위해 한은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특히 작년 8월 금통위에서 콜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연 4.50%로 끌어올릴 당시에는 이 총재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의 금통위원들이 금리인상에 찬성 3명, 반대 3명으로 팽팽하게 엇갈리자 이 총재가 콜금리 인상에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금리인상을 관철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이 총재의 강단을 새삼 확인했으나 한편으로는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서 재정경제부의 입김을 떨어내고 한은의 독립성을 한층 끌어올리는데 일조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없지 않았다.
이 총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달 초 금통위 직후에는 "현재의 콜금리 수준은 긴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혀 여전히 콜금리의 추가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여건만 된다면 추가로 콜금리를 올리겠다는 의지를 거두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이 총재의 의지와는 달리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작년 말 지준율 인상과 총액한도대출 한도축소를 결정할 당시 재경부에 사전통보된 의안 내용이 금통위 통과를 하루 앞두고 시장에 유출돼 혼란을 초래했던 것은 이 총재와 재경부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엉뚱한 모양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게다가 이 총재 취임 후 재경부와 한은의 협의를 통해 물가안정목표를 기존의 근원인플레이션율에서 소비자물가상승률로 전환하고 목표수준을 3.0%±0.5%포인트로 설정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물가안정목표범위를 너무 높게 잡아 한은이 재경부에 발목이 잡힌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편이다.
중국 효과로 전 세계의 저물가 현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물가안정 목표를 현실적인 수준보다 높게 설정함으로써 한은이 물가앙등 위험에 대비해 콜금리를 선제로 인상하는 것이 어렵게 됐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다.
한편으로는 증권사에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조항이 포함된 자본시장통합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과정에서 한은이 증권사에 지급결제 업무 허용에 강력히 반대했음에도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점은 법안 제안권이 없는 한은으로서는 숙명적으로 감수해야 할 부분이지만 이 총재의 정치력 부재가 노출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여전히 금리인상에 부정적인 재경부와 달리 한은은 가능한 한 금리를 올리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도 정부의 갈등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정책적 조화와 협조를 이루면서 한은이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펼쳐나가는 것이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다.
◇보수적 조직 개혁에 메스 들어= 한은 내부에서 이 총재 취임 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성과주의에 입각한 내부 조직개혁이다.
고임금에 정년이 보장돼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눈총을 받아 온 한은이 성과급제 도입과 근무성적 하위 5% 퇴출제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 총재는 취임 초 성과급제 도입을 위한 근무성적 평가시스템 시행을 앞두고 직원교육용 동영상물을 통해 "한은은 한은 직원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 존재가치가 없다"고 강조, 긴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노조의 반발과 현행 노동법상에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없이는 정리해고가 불가능한 한계 때문에 `퇴출제'의 도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주변의 관측을 뒤엎고 `근무성적 하위 5% 퇴출제'를 강행했다.
이를 두고 한은 안팎에서는 이 총재의 스타일이 외유내강(外柔內剛)이 아니라 밖으로 강하면서 안으로는 더욱 더 강한 `외강내강'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이 총재는 취임 1년을 맞아 사내보인 `한은 소식'과 가진 대담에서 "중앙은행은 한 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조직이기 때문에 경쟁상대가 없어 스스로 채찍질하지 않으면 무사안일에 빠지기 쉽다"면서 "보수적이고 독선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집단은 스스로 정신무장을 단단히 하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주문했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