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르주아 사회와 패션/필리프 페로 지음·이재한 옮김/439쪽·2만6000원·현실문화연구
“왜 옷을 입는가?” 정답 1=“추워서”, 정답 2=“몸을 보호하려고”, 정답 3=“멋을 내려고”.
모두 맞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20세기 초 터키의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은 교수형이라는 극단적 형벌까지 앞세워 ‘야슈마크(이슬람 여성들이 착용하는 베일)’의 착용을 금했다. 왜일까. 우리가 몸에 걸치는 의복에는 혹시 우리가 무심코 넘겨버리는 상징과 기호, 비밀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말한다. ‘당근(물론)’이라고. “의복은 언제 어디서나 물질적이고 상징성을 띤 대상으로 존재하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입는다. 그러므로 옷을 입는 것은 개인적인 행위이자 사회적 행위”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20세기의 의복에 담긴 사회적 기호와 상징을 파헤치기 위해 19세기 의복사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특히 귀족 중심의 18세기 의복 체계를 끊어버리고 기성복과 대량생산, 백화점의 소비문화를 이끌어낸 19세기 부르주아 계급의 ‘복식 혁명’을 추적한다.
의복은 계급적 함의를 담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의 귀족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의복으로 자신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남들과 구별 짓고자 했다. 반면 귀족에 도전했던 부르주아들은 차별성이 없는 검은색으로 의복의 도덕성을 설정함으로써 금욕주의적인 태도를 무기로 19세기 의복 혁명을 이끌었다.
이처럼 옷을 통해 계급적, 이데올로기적 변화를 꿰뚫어낸 저자의 통찰력은 간단하지 않다. 여기에 화장실과 규방, 백화점과 재봉사, 사교계를 넘나들며 옷을 둘러싼 얘깃거리와 흥미로운 지식들을 방사형으로 활짝 펼쳐 보인다.
이 책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했다. 50쪽이 넘는 각주집만 봐도 저자가 얼마나 꼼꼼하게 자료를 챙기고 보듬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뿐 아니라 책장 하나를 넘길 때마다 각종 자료사진과 의복 및 당시 사회상과 관련된 용어설명이 친절하게 담겨 있다.
그렇다면 기성복 시대의 도래로 인간의 본능이라 할 수 있는 ‘구별짓기’는 종언을 고했을까. 저자는 “기성복시대에도 외양경쟁은 19세기로부터 물려받은 구별짓기의 논리에 따라… 이전보다는 덜 소란스럽지만 더욱더 교묘하게 지속된다”고 말한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