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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싹트는 교실]서울 반포고

입력 | 2007-03-31 03:19:00

기피 학교에서 선호 학교로 변신한 서울 서초구 반포고 2학년생들이 30일 영어 수업을 듣고 있다. 과거 이 학교에 배정된 학생들은 울상을 지었으나 이제는 주변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전영한 기자

‘반드시 포부를 성취하게 하는 고교’라는 반포고의 구호를 외치고 있는 이한준 교장(앞줄 오른쪽)과 학생들.


‘반은 포기하는 학교’에서 ‘반드시 포부를 성취하게 하는 고교’로 변신한 학교가 있다.

1984년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공립 반포고가 문을 열었다. 많은 학부모가 선망하던 ‘강남 8학군’에 있지만 대학 진학 실적이 인근 학교보다 좋지 않아 ‘반은 포기하는 학교’ 또는 ‘반포랜드’로 불렸다. 이 학교에 배정된 학생과 학부모들은 울상을 지었다.

반포고는 인근 고교에 비해 학생 수가 적어 내신 평가에서 ‘수’를 맞는 학생이 적었다. 게다가 공립학교여서 교사 순환이 잦았고 교원노조 가입자도 많아 학부모들은 불만이었다. 학생들은 학교 대신 학원에 의지했고, 이를 당연시하는 교사도 있을 정도였다.

2002년 3월 김용균 교장이 취임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김 교장은 교사와 학생의 패배감부터 ‘청소’하기 위해 ‘반드시 포부를 성취하게 하는 고교’라는 구호를 만들었다. 조회 때는 학생들에게 이 구호를 외치게 했다. 자기 암시 효과를 노린 것.

“학교를 비아냥거리는 말에 기가 죽어서인지 교사나 학생들이 자긍심과 목표의식이 부족했어요. 마음가짐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교장은 자긍심을 갖는 지름길은 학력 신장에 있다고 생각해 면학 분위기 조성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학년별로 자율학습실을 만들어 원하는 학생들은 오후 10시까지 자율학습을 하도록 했다.

“귀한 화초는 정성을 들여야 잘 자란다”는 김 교장의 간곡한 설득에 교사들 사이에서도 냉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교사들이 교재 개발 및 강의 연구를 하느라 밤늦게까지 일하는 걸 본 학생과 학부모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학원 강사에게 자녀를 맡겼던 학부모들 사이에서 교사에 대한 신뢰가 싹텄다.

올 2월 부임한 이한준 교장도 열심이다. 이 교장은 매일 오전 7시까지 출근해 교문 앞에서 학생들과 인사를 나눈다. 3학년생의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오후 10시 이후가 그의 퇴근 시간이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상위권 대학 진학자가 매년 증가해 지난해에는 졸업생 393명 가운데 16명이 서울대, 28명이 고려대, 32명이 연세대에 합격했다. 올해도 서울대(15명), 고려대(30명), 연세대(31명) 합격자를 냈다.

이 학교 이병설 교무부장은 “강남지역에서 이들 대학 합격자 수가 더 많은 고교도 있지만 졸업생 수 대비 합격자 수를 따지면 반포고가 최상위권”이라고 말했다.

1학년생 이형섭(16) 군은 “반포고에 배정받자 부모님이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반포랜드’의 변신을 지역 사회에서 인정한 셈이다.

다양한 외국어 교육도 반포고의 강점이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 교사들이 ‘국제이해교육부’를 만들어 외국 자매학교 방문 활동, 외국어캠프, 영어 듣기 대회, 일본어 및 중국어 어휘 대회 등을 열고 있다.

국제이해교육부 부장 김향숙 교사는 “외국에 살았거나 어릴 때부터 외국어 공부를 꾸준히 해 실력이 뛰어난 학생이 많다”며 “이들이 소질을 계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과정을 개설했다”고 말했다.

학부모 윤영희(43) 씨는 “교감 선생님도 수시로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학생을 보살피며 학생들이 모르는 수학 문제를 가르쳐 주신다는 말을 듣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반포고는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학력 신장, 환경교육, 학교평가 분야 우수학교로 선정됐고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로 선정되기도 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